창간과 함께 주위 지인으로부터 보내온 축하 난 십여 개 중 동양난과 서양난 각 1개가 등 뒤에 둥지를 틀게 됐다. 서양난 몇 줄기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순리를 따르듯 금세 화사한 꽃잎을 떨어뜨렸고, 동양난은 단아한 자태를 뽐내며 은은한 향을 뿌리다가 날씬한 잎들만 남긴 채 모습을 감추었다. 동양난과 달리 서양난은 꽃이 지고나면 곧 잎도 함께 시들해지다가 오래지 않아 죽어버리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생을 불태우는 듯 줄기 끝이 하얗게 바래고 있어도 지인의 소중한 마음을 담아 온 터라 마지막까지 동양난과 함께 곁에 두고 싶었고, 그러는 동안 동료들도 물을 주며 관심과 애정을 보태 주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말라비틀어지던 앙상한 한 줄기는 퇴화를 멈추었고, 그 끝에서는 꽃망울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신기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두 꽃망울은 이내 주먹만 한 연보랏빛으로 몸단장 해 화사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이뿐이 아니었다. 꽃잎 아래 마디에 연이어 작은 움직임이 포착됐고, 시샘이라도 하듯 함께 생을 마감하던 이웃한 두 줄기에서도 창조의 몸부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일상에 찌든 현대인에게는 사소한 것조차도 큰 기쁨이 될 수 있듯 죽어가던 난의 환생은 정말 큰 환희로 다가왔다. 행여 꽃잎이 지고 난 뒤 바로 버렸다면 저걸 아까워서 어찌 했을까 하는 안도와 더불어 곁에 좀 더 두고자 한 결정이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을 완성시키고 있는 난을 바라보면서 흡족한 마음에 주위의 관심과 애정, 무언의 격려가 만들어낸 작은 기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어떠한 형태로든 기대 이상의 결과로 화답을 한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물론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아무리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도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를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국가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우리는 아낌없이 준다. 행여 기대에 어긋난 결과가 나를 실망시킬지라도 관심과 애정을 주고서 맞이하는 결과가 주지 않고 맞이하는 결과보다는 낫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한 사람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眞情)을 통해 빚어지는 작은 기적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모른다.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 격려의 중요성은 사회 저명인사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확인된다. 어릴 적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오늘의 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관심과 애정을 담은 당시의 격려가 없었다면 오늘 그들의 현재는 이루고 싶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와 이로 인해 재조명된 부실한 국가안보의 현주소도 국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다. 국방은 허장성세(虛張聲勢)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전 여느 때에도 그래야 했지만 생때같은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태 이후에 만큼은 꼭 정부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좀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체계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했어야 했다. 대응 공격을 할 무기조차 빈약하고, 확보한 무기조차 고철덩어리처럼 부실한 연평도의 우리 군 전력을 확인하고, 포격 이후 찜질방 주인보다 못한 피난민 관리 실태를 보면서 과연 국민을 보호할 국가가 존재했었나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국가는 연평도사태 이후의 실망과 충격에도 식지 않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애정을 주목해야 한다. 해병대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입대를 위해 몰려들었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국민의 관심과 애정은 충분하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그것이 부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