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상무이사/총괄국장

이탈리아 상원의 행보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정치적 자살’로 평가될 정도로 가혹한 상원 개혁안을 스스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후 파시즘 정권의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 상하원이 동등한 권한을 갖는 양원제를 도입했다. 독재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도입한 양원제가 이탈리아를 수십 년간 정치적 불안정으로 빠져들게 발목을 잡았다.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지난 70년간 이탈리아의 내각은 63회나 바뀌었고 마테오 렌치는 27번째 총리다. 정부가 입법안을 제출하면 의회는 통과시키지 않고 상하원이 계속 주고 받으면서 입법을 지연시키거나 철회시키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국회의원은 상원 315명, 하원 630명 등 총 945명이나 된다. 게다가 혜택도 엄청나다. 의원들은 1600만 원의 월급에 야근수당 600만 원을 매월 받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을 감안할 때 국회의원 연봉은 남유럽에 비하면 세 배, 소득이 훨씬 높은 독일에 비해서도 두 배 높은 수준이다. 이외에 전화요금(연간 400만 원)이 국비에서 지원되며 대중교통, 극장, 수영장, 축구경기장 등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상원이 70년간 계속돼 온 악순환의 첫 번째 고리를 끊었다. 우선 의석수를 기존 315석에서 100석으로 무려 215석이나 줄였다. 게다가 상원의 법률제정권도 없애는 등 거의 친목단체 수준으로 권한을 축소해 사실상 해체와 다름없는 수순을 밟고 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놓은 것이다. 찬성 179, 반대 16, 기권 7표다. 자신의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국가발전의 걸림돌로 비난받아 왔지만 이탈리아 상원의 이번 결정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제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하고 내린 결단이기 때문이다.

우리국회에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볼썽사납다. 헌법재판소가 기존 인구편차 3대 1을 2대 1로 개정하라고 결정함에 따라 246개 선거구 중 20여 곳이 분구나 통폐합 등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리맨더링 획정 방지와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독립기구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설치했으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농촌 지역구 감소문제, 지역 간 첨예한 대립 등으로 단일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리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심이 개입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당리당략에 따라 의석 수 확보가 용이한 지역은 늘리고 그렇지 못한 지역은 줄이려 하기 때문에 끝없는 대립과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다. 비례대표를 줄이고 늘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돌파구로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줄여도 시원찮은 판에 말이다.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려면 기득권부터 포기해야 한다. ‘내 것은 절대 손댈 수 없어’가 아니라 ‘내 것부터 통폐합 또는 조정 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버리는 것이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선거구 획정은 국민의 평등한 선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선거구 협상을 하면서 영호남은 왜 나오고 농어촌이 왜 이슈로 부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법과 원칙에 입각한 선거구 획정만이 해답이다. 시간만 끌다가 또다시 선거일정에 쫓겨 기형적인 선거구 획정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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