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가 되면 너도나도 나름의 목표를 정하고 결의를 다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담배를 끊는다거나, 살을 뺀다거나 하는 것들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며, 가정과 직장에서 이런저런 것들이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곤 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내뱉는 약속은 가정에서는 가족들에게, 직장에서는 동료들에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이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려는 각오로 한두 가지 부수(附隨) 약속을 덧붙인다. ‘못 지키면 술 한잔 거나하게 산다. 돈 얼마를 걸겠다. 선물을 하겠다.’ 등등.그래서 얼마 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청산과정을 밟는다. 가벼운 야유가 어김없이 뒤따를 뿐더러, 상대 잘못 만나면 부수적으로 내건 약속을 실천하지 않고는 다소 피곤해지기 일쑤다. 부수적으로 내건 약속까지 지키지 않더라도 가정에서의 약속 위반은 그래도 쉬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약속은 이보다는 좀 더 가혹한 셈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번복하면 ‘정신력 또는 강단 부족’ 등 인물에 대한 평가가 뒤따를 수 있으며, 부수적 약속의 이행마저 지키지 않으면 신뢰도마저 크게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약속을 실천할 의지가 부족한 경우, 가족은 그렇다 하더라도 동료들에게는 신중하게 약속을 내뱉는다. 가정과 작은 직장에서조차 약속을 둘러싼 처신이 이러한데, 수많은 대중 과 국민 앞에 실천을 약속하는 정치인의 공약이야말로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사회로, 약속을 하는 대상의 단위가 커질수록 위약(違約)에 대한 책임의 크기가 비례하기 때문이다. 후보자의 실천의지와 철학, 사상 등을 담아 유권자에게 약속했으니 ‘공약(公約)’은 후보자의 양심과 인격이며, 많은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공언한 약속, ‘공약’을 후보자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으므로, 약속의 불이행과 번복은 당선 무효와 다를 바 없다.양심과 인격을 걸고 한 약속인데, 어떻게 저버릴 수 있으며, 약속을 믿고 기꺼이 선택해 준 그들의 믿음을 어떻게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의 신뢰를 쌓을 수 없으며, ‘양심도 없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고도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가벼운 처신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지만 경인년(庚寅年) 섣달 그믐날 하루 전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좌담을 통해 불거져 나온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조성 백지화’ 발언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이어서 가히 충격적이다.공약집에 없는 공약이라고 발언한 것도 충격이고, ‘공약집에 있던 것도 아니다’라는 발언은 ‘공약집에 들어있지 않는 공약은 공약도 아니다’라는 것 같아 더욱 충격이 크다. 공약집 내의 존재 유무를 떠나 국민을 향해 수차례 약속한 것이 아닌가. 약속은 지키려고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신용과 체면도 중요하지만 약속을 어기면 그만큼 서로의 믿음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카네기의 말은 약속의 실천을 거듭 강조한다.이 땅의 수많은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치는 것도 이러한 신뢰의 상실이 수없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공약을 지키지 못하면 즉시 사퇴하겠다’는 부수 공약을 내도록 제도화한다면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별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음력으로 한해의 띠를 맞이하는 생활 습관으로 인해, 양력으로는 한 해가 바뀌어도 음력으로는 해가 바뀌지 않았으므로 설날 이전에는 바뀐 띠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떠오른다. 2011년 2월 3일 설날을 맞으면서 이제 진짜 신묘년(辛卯年)을 맞았다. 천금 같은 공약이 경시(輕視)되는 정치인의 약속 뒤집기는 2010년 경인년(庚寅年)년까지만 있던 구태로 남아 말끔히 종식됐으면 하는 바람 정말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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