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 내포취재본부장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전국 시도 교육청 간의 힘겨루기가 올해도 ‘땜질식 처방’으로 잠재워질 듯하다. 국회가 지난해처럼 예비비에서 3000억 원을 우회 지원하는 형식으로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켜 이번 사태도 편법적이나마 해결 방안이 모색됐다. 그동안 국고 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예산 편성을 거부했던 시도 교육청들도 충족할 만한 예산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명분이 약화돼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워지게 됐다.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누가 예산을 부담할 것이냐’라는 주체 논란이었다. 교육부는 관련 법률 개정으로 의무지출경비로 지정된 만큼 지방교육이 부담해야 한다고 시도 교육청에 떠넘겼고 시도 교육청들은 대통령 공약사항인 영유아 무상보육 예산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며 맞불을 놓은 형국이었다. 교육 개혁 차원에서 수립된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이 교육재정이 열악한 시도 교육청들과 교육부 간의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지방교육재정이 위기상황으로 내몰릴 처지인데도 교육부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했으니 중앙과 지방 간의 샅바싸움은 필연적이었다. 2년에 걸친 누리과정 사태는 항구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미봉책으로 순간순간 넘어가고 있어 중앙과 지방의 갈등은 언제든지 재점화될 수 있는 휴화산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누리과정 사태에서 보여준 충남도의회의 이율배반적 행동이 도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도의회는 그동안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이 지방교육자치의 근간을 흔들고 농어촌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정책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해 왔다. 지방교육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교육청을 통제하고 길들이려는 것이라는 다소 과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9월에는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을 철회하라는 촉구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지방교육 발전을 저해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도의회 차원의 소신 있는 목소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도의회의 소신은 두달만에 완전히 함몰돼 도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다수 의석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갑자기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변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1073억원을 편성하지 않은 충남교육청을 질타하고 압박했다. 얼마 전까지 지방교육 황폐화를 운운하면서 반대논리를 폈던 도의회가 교육감의 예산안 제안 설명을 거부하고 예산을 대거 삭감하겠다느니, 예산 심의조차 하지 않겠다느니 하면서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도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새누리당 도의원들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 압박은 전국 대부분 시도에서 일제히 이루어지고 있어 세간에서는 중앙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니 도의회의 태도 돌변이 지방교육의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중앙 정치의 논리를 좇는 소신 없는 행동으로 비춰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방자치의 근간에는 지역발전이라는 대명제가 깔려 있다. 이는 지방의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명분이기도 하다. 지방의회도 기회 있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지역발전에 혼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다짐을 믿어 왔던 도민들이 누리과정 사태에서 보여준 도의회의 이중적인 태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내뱉은 약속이나 말들이 가식적인 허언이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중앙 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지방의회의 정치 현실과 한계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중앙 정치권의 말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도민들의 눈에는 볼썽사나울 따름이다. 지역교육발전은 팽개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는 것에서 도민들은 소신도, 영혼도 없는 도의회를 확인하고 있다. 도의회의 이율배반적 행동이 2년여 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평가받을 지 자못 궁금하다.
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