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을 내는 비법의 으뜸은 단연 공부였다. 권력과 맞닿아 있는 튼튼한 동아줄도, 뒷배도 없는 무지렁이들이 할 수 있는 저주스럽기까지 한 현실에서의 탈출구는 공부였고, 그래서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의 화두(話頭)는 늘 교육이었다. 그래서 사법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하려는 수많은 청춘들은 고시원에서, 산사에서, 퀴퀴한 냄새가 자욱한 단칸방에서 인고의 세월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날만을 학수고대하며 청춘을 불살랐다. 오늘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대가가 가져다 줄 합격의 영광이 너무도 달콤한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누구도 그 미래를 의심하지 않고, 기꺼이 고통을 껴안았다. 의식주 다 궁색하게 버텨도, 자식 공부를 위해서는 기꺼이 모든 것을 다 바쳐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던 열혈 부모님의 희생을 자양분 삼아, 자식은 그렇게 꿈을 키워갔다. 내로라하는 부존자원도, 기술력도 없던 빈국(貧國) 대한민국이 가장 단기간에 세계 경제 10위권을 넘나들며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부모들의 고집스러운 자녀교육 덕택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한국 교육열은 세계가 관심을 갖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오늘 번영된 선진국가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주역 어머니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될 것 같다.그러나 이제는 ‘지나치면 부족함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을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한 이 목하의 세태가 겸허히 수용해야 할 때다. 일방통행식 부모 주도의 지나친 교육열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끼칠 부작용에 대한 유비무환의 자세로 말이다. 불타는 교육열이 가져다 준 화려한 영광에도 불구,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해버려 아름다운 꿈조차도 간직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의 어두운 얼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는가. 무엇을 느껴보았는가 묻고 싶다. 공교육과 사교육이 서로 우월성을 경쟁하는 한바탕 악다구니 속에서, 들숨 날숨 없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이리 저리 던져지는 어린 동심을 보노라면 몸소 배운 대로 자식에게 공부만을 닦달할 자세를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이 염려스러운 뜨거운 열기에 기름이라도 붓겠다는 듯 사교육 대책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교육정책도 그저 말문이 막힌다. ‘사교육 없는 학교’라는 다소 황당한 정책에 이제 갓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앳된 소년은 축 처진 어깨에 납덩어리 같은 육중한 가방을 맡긴 채 어둠을 벗 삼아 학교로, 학원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긴다. 정규 교과과정을 끝낸 뒤 별도의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을 학교에 밤늦게까지 붙들어 두는 것은 학교 안으로 사교육을 가져온 것에 다름 아닌 데도 마치 학교는 훈장을 단 듯하다. 다니던 학원은 그만 두는 대신 학교 수업을 마친 뒤로 시간을 미루어 지속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원 문을 나설 수 있으니, 중학교에 갓 입학한 꿈 많은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냉정한 시각으로 현실을 주시해보라. 빈약한 체력에다 메마른 정신건강까지 더해 피폐해진 내 자식과 내 이웃의 슬픈 자화상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공부만을 외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힘들어도 극복하지 못한 채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선택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도 모른 채 외톨이로, 이기주의자로 살아가는 불쌍한 군상들은 바로 내 자식의 모습이고, 교육열에 미친 내가 손수 빚어낸 우리 사회의 돌연변이임을 애써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로 응수를 해오는 이들도 있겠으나 ‘스스로 끊임없이 배우고 정진하는 삶의 자세’를 강조한 공자님도 공부만 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실 게 분명하고, 더구나 지금 같은 과도한 교육열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으실 게다. 청소년들에게 밝고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가치관을 심어 주어 나라의 미래를 가꿔갈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이건만 지금 우리 교육환경으로는 도무지 현실에 옮기기 벅찬 이상향(理想鄕), 유토피아의 꿈인 것 같다. 이 나라 미래의 동량, 우리 아이들의 공부 스트레스를 조금만이라도 덜어 주자. 그래야 아이들이 어깨를 펴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잠깐의 여유라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한 나라가 어찌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윤성국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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