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국 상무이사/편집국장
우리는 상식을 벗어난, 마치 궤도를 이탈한 듯한 괴이한 사회의 편린들을 너무 많이 목격하게 되고, 이로 인한 충격으로 삶의 의미마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잔혹한 살인과 폭력이 이어지고,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기꺼이 폭력과 테러에 가까운 날선 비난을 퍼부으며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극단의 무리들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복잡다단한 사회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 단면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나와 다른 것의 인정에 지나치게 인색한 불통(不通)의 사회가 안게 되는 필연적 결과로 분석해볼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대신 족집게처럼 우열(優劣)을 가려내고, 우열은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 경시와 경멸, 적대(敵對)로 변해버린다. 인간관계에 경시와 경멸, 적대가 전제되는 순간 상대를 배격, 멸시, 응징의 대상으로 몰고 가는 극단의 행동 유발 기제를 장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서울 지하철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신 병력의 남성에 의해 자행된 이 안타까운 죽음이 사회에 여성혐오증의 화두를 던졌다. 여러 가지 원인이 지적되고 있으나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연약한 여성에 대한 평가절하와 편견, 오만 등이 동기가 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것은 서로 같지 않은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단순히 다를 뿐인데 여성을 마치 이상하고, 잘못된 존재라 여기고, 덩달아 연약하다는 이유로 보잘것없는 사내의 완력으로도 제압이 가능해 어찌해볼 수 있다는 여성에 대한 비뚤어지고 왜곡된 인식이 함께하게 된다. 이런 의식이 쌓여 결국 여성비하, 여성혐오 등으로 분출되고, 여성을 상대로 짐승보다 더 짐승스러운 짓을 저지르게 된다.
이 참혹한 사건으로 많은 여성은 물론 국민적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도 피해 여성추모 행사장은 물론 인터넷 등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여성혐오가 연발했다. 추모행사에 함께한 여성들에 대한 폭언과 노골적 시비, 입에 담기 민망한 험한 비난 글은 다름의 인정에 인색한 불통의 사회가 처한 병세를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취업난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원인으로 돌리며, 여성에 대한 악감정을 드러내는 남성도 있다. 한정된 자리를 서로 다퉈야 하니 여성 취업이 늘수록 당연히 남성의 취업난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성들에 대한 악감정을 송곳니 세워 드러내고, 혐오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주지하다시피 남성의 사회 진출은 여성보다 더 많다. 2012년 기준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71.45%인 반면 여성은 49.25%다. 그러면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은 남성들을 향해 혐오를 드러내고, 이성 간 대혈전이라도 벌여야 하는가. 말이 아니다.
이성을 폄하하고, 폭력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세상이다 보니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못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일상이 돼버렸다. 좌우,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립으로 인한 사회갈등은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고, 치유가 불가능해보일 정도다. 이런 흉측한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사상과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진보와 보수의 적당한 대립을 통해 발전하게 되지만 나와 다르면 순간 모든 것이 부정되므로 사회 화합은 애초 불가능하다. 누구나 나와 다른 의견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예 그러지 않은 사회 속에 살고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건 틀린 것이다.
사상과 이념은 물론 크기와 색깔, 모습 등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정말 필요한 때다. 그러면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들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