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닥친 불행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게 닥친 불행은 쉽게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우리는, 이번에는 예외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착각에다, 실제 닥친 불행조차 뭔가 잘못된 것일 뿐이라는 강한 자기부정이 넘쳐난다. 이로 인해 인간은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에 소홀하게 되며, 예견되는 참사조차도 대비에 소홀해 연이어 큰 화를 당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한다.‘불행이 내게, 우리에게 곧 닥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불행에 대비한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비와 이를 위한 준비가 치밀하고, 체계적일수록 충격의 정도는 반비례하므로 준비된 자와 아닌 자가 맞이하게 되는 통증은 확연히 구분된다.왜구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의 바다를 지킨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이 적은 수군으로 적 대함대의 침략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지(智) 용(勇) 덕(德)을 두루 갖춘 명장이기에 가능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침략에 대비한 준비 자세였다. 그가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것은 1591년이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은 1592년이다. 짧은 1년의 기간이었지만 장군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부임하자마자 군사들의 조련에 힘을 쏟았다. 당시 육군에 비해 천대를 받던 해군은 사실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졸들이 많았고, 기강 또한 해이해진 변방의 노약한 병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침략을 예견한 장군은 식량을 모으고, 무기를 확보하는 등 군대를 정비하기 시작했고, 끊임없는 훈련으로 군사들을 단련시켰다. 이러한 장군의 준비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빛을 발했다. 수군의 계속되는 승전보와 달리 육군은 패전을 거듭하며, 영토를 내어주기 바빴다. 준비된 수군과 준비되지 않은 육군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맞게 된 것이다.유비무환의 교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미심장하다.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는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보답이 알차다. 닥쳐올 사태의 충격을 피해가고, 최소화하는 지름길은 대비뿐이다. 성장을 위해서든, 사고에 대비해서든 준비된 사회는 준비되지 않은 사회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맞게 됨은 자명한 사실이다.일본의 대지진 참사는 시사하는 바 크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삶의 현장은 아비규환의 폐허로 변해버렸다.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인한 방사능의 위기는 경제대국 일본을 위기로 몰고 있다. 부모와 자식을 잃은 가족들의 절규가 모두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더 이상의 참사가 없기를 간절히 빌어보지만 하루를 더할수록 참사의 규모는 할 말을 잃게 한다. 유독 지진이 많은 나라 일본은 지진 대비에 관한한 할 말이 있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준비된 나라였다. 철저한 내진 설계와 재난 대비훈련 등 그 어느 나라보다 철저히 대비해왔다. 그러나 자연 앞에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 일본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의 국가적 대비가 없었다면 진도 9의 대충격은 이 정도 피해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지진에 대비한 내진설계 의무화 등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오랫동안 지진 안전지대로 생각하며, 무감각하게 지내온 한반도는 여전히 너무나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 여전히 내진설계와는 무관하거나 취약한 건물의 수가 많을 뿐 아니라,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교 등 낡은 집단 시설은 시급한 점검과 보완이 필요한 형편이다.예견되는 참사를 간파하고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대비를 미루다 화를 당한다면 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가 되고 만다. 이번 일본의 대참사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 지출 등 대비를 위한 그 과정이 험난하겠지만 ‘준비된 사회’는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우리를 노리는 위기는 지진뿐이 아니다. 이 기회를 빌려 우리는 과연 안전지대에 살고 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아울러 건물 및 교각 붕괴, 화재 등 재난분야에 대한 관계당국의 현장 특별점검과 감사가 즉각 시행됐으면 하는 바람 정말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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