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국 상무/편집국장

‘이 국회에 있는 여전히 최소임금인상을 반대하시는 모든 분들께 이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일 년에 만오천 불 안 되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해보세요. 그렇지 않다면 미국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힘들게 일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의 임금을 올리는 데 투표하세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연설이었으면 좋겠지만 2015년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신년국정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당위성을 역설한 명연설이다.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최저임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2016년 7월 1일.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현행 시급 6030원과 1만 원 사이에서 격한 논쟁이 오갈 뿐 이런 속 시원한 연설은 등장하지 않고, 지루한 논쟁만 반복된다. 사용자든 근로자든 많이 벌고자 하는 욕망이 우선이니 더 받으려는 자와 덜 주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팽팽하지 않을 수 없고, 입장차 또한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첨예한 사회적 과제일수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체 근로자 중 최저임금 수준도 받지 못하는 임금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10% 선이다. 더 이상 저소득 근로자들을 외면해서는 저소득층의 생활불안정에 따라 결국 우리 사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최저임금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이다. ‘생활안정을 위해’라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6030원으로 하루 8시간씩 꼬박 근무해야 한 달에 126만 원을 벌 수 있는데 이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팍팍한 삶이 아닐 수 없다. 126만 원이 도저히 생활안정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짐짓 모르는 척할 뿐이고, 남의 일이라 관심이 부족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 최저임금 문제는 사용자와 근로자 두 경제주체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간단치 않다. 결국 합리적이며,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할 일은 현행 최저임금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분야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다. 현행 수준조차 지키지 않으려는 사용자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서 저소득층의 숨을 터 주어야 한다. 숨조차 쉬기 힘든 약자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 다음은 점진적 인상이다. 당장 올해 1만 원으로의 인상은 사용자에게 파격이라 할 수 있다. 월급 기준 200만 원이 넘는다. 이조차 충분치 않은 돈이라고 할 수 있어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2~3년 정도의 목표 시점을 정한 뒤 실천에 옮겼으면 한다.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한 현안이라면 강자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의 해결책이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꼭 사회지도층이나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는, 내 사업장을 가진 사용자가 더불어 산다는 도타운 덕을 베풀어 저소득 근로자를 향해 평범한 시민들의 ‘시티즌 오블리주(citizen oblige)’의 실천에 동참할 수 있다.

물론 사업장 중 매출액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자에게 우선 적용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으며, 인상분의 일정액을 세금에서 보전해주는 방법도 검토해볼 만하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보다는 드러나지 않지만 평범한 근로자 누구나 참여할 수도 있다. 임금근로자의 연말정산 시 만 원 정도의 자발적 기부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갖춘다면 이들 근로자 또한 소상공인들과 함께 시티즌 오블리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넉넉지 않은 사람들의 베풂과 배려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생활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저임금제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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