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회 사회부국장

며칠에 한 번꼴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호사를 누린다. 그것도 친절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수송해 주는 운전기사까지 있는 자가용 말이다. 그저 몸을 맡길 뿐 별 수고로움은 없다. 대전 어디를 가든 그저 1400원(교통카드 1250원)이면 족하다. 누군가는 그 자가용을 시내버스라고 부른다.

반면 간혹 1400원이라서 설움을 곱씹기도 한다. 무안하리만치 불친절하고 투박하게 운행하는 기사 양반 뒤통수를 보고 있노라면 목적지에 이르기도 전에 내려 발품을 파는 게 낫겠다는 객기를 옹알이로 삼키곤 한다. 그 순간은 써금써금해도 기꺼이 내 발이 돼 주는 오래된 ‘애마’가 그지없이 고맙게 느껴지면서 공연히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앞선 자가용은 한 줌 얻어먹은 비타민처럼 상큼한 포만감을 주지만 뒤 자가용은 한겨울에도 불쾌지수를 높여주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대전 시내버스가 말하는 친절과 배려의 위력이다.

어떤 대접을 받느냐는 순전히 운이다. 다행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많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축이다.

어느 축축하게 처진 밤, 집으로 걸어갈 요량을 눈썰미에 들어온 버스가 낚아챘다.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는 기사를 일별하고 잦바듬하게 서 있는데 이 양반 무선 마이크를 차고 타는 사람은 물론 내리는 사람에게 일일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를 연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디 인사성만 밝던가. 배려심이 읽히는 운전 솜씨도 여간 아니었다. 그날 유난히 지친 어깨를 부축해준 그 이름, 911번 아무개 기사님 감사합니다. 514번 아무개 기사님, 106번 아무개 기사님도 탑승한 시간대와 노선만 달랐을 뿐 그 모습 그대로 잠시나마 “내가 대접받으며 살고 있구나” 싶은 만큼의 작은 감동을 줬다. 그들이 선사한 친절과 배려는 결코 1400원어치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우리 사회는 공공(公共)에 대해 서비스를 주문한다. 국민들의 세금 운운하며 대접받기를 원한다. 때로는 야료하는 이들로 인해 ‘갑질’ 논란이 일기도 하지만 양질의 서비스를 바라는 것은 그리 탓할 만한 일은 못 된다. 다만 대접받을 자세가 돼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흔하다는 게 문제다. 세 명의 시내버스 운전기사들이 보여준 호의에 대한 남녀노소의 반응도 그랬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거늘, 연신 건네는 인사에 얼렁뚱땅 시늉이라도 맞받는 이를 찾기 어려웠다. 쑥스러워 그런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관찰자 시점에선 영 민망했다. 인사를 건넸는데 상대방이 삼키고 무시하면 얼마나 무안할까 싶은 생각에 잠시 내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이 말이, 그것도 먼저가 아니라 받는 말이라면 응대해도 손해날 것 없고 덧붙여 친절의 배를 불릴 수 있을 텐데 괘념하며.

비단 시내버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의 옷을 입고 있는 공간에서 상대방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기만 바랄 뿐 돈이 드는 것도,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닌 격려의 말을 아끼는 게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에 친절과 배려를 원한다면 나 스스로 대접받을 준비가 돼 있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에멜무지로 먼저 다가서는 당신이라면 썩 괜찮은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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