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스포츠는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다. 환희와 감동,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하고 때로는 아쉬움과 분노를 표출시키게 한다. 국가간 전쟁을 멈추게 하면서 인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도 스포츠만이 가능하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암울했던 90년대 IMF 금융위기 시절, 박찬호와 박세리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자살과 부도 소식에 절망하던 국민들은 박찬호의 투구 하나하나에 환호하며 시름을 덜었다.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서슴없이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보여준 ‘맨발의 투혼’은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2002 월드컵 때에는 수백만명이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한목소리로 승리를 기원하는 경이로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게 스포츠의 힘이다.

스포츠의 본질은 소통과 화합, 비굴한 승리보다 떳떳한 패배를 더 값지게 생각하는 숭고한 스포츠맨십을 배양하는데 있다. 결과에 매몰되기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이 높이 평가되고 정정당당한 경쟁 속에서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정신을 심어주는 게 스포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결과만을 중시하는 ‘괘도이탈’된 스포츠관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스포츠는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게 된다. 그렇다보니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1등 지상주의와 지나친 경쟁의식이 가세하면서 참여와 화합이라는 스포츠 정신은 퇴색됐다. 묵묵히 땀 흘린 노력은 안중에 없고 오직 결과만으로 평가하니 스포츠의 본질은 온데 간 데 없다. 올림픽 시상식을 볼 때마다 외국과 우리나라 선수들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외국선수들은 어떤 색깔의 메달이든 한결같이 밝고 환한 웃음을 띠면서 시상대에 오른다. 메달 색깔과는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고 대회를 즐겼다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반면 우리 선수들은 우승자에게서만 웃음을 볼 수 있고 2, 3위는 울상이다. 자랑스런 은메달, 동메달인데도 시상대 맨 위에 자신이 서지 못했다는 생각이 앞서니 울상일 수 밖에.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감만 있을 뿐 상대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는 배려, 패자와 함께 나누는 우정의 눈물, 순위를 떠나 즐기는 스포츠의 본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이 우리 스포츠의 현주소다.

올해 열린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8위에 오르며 스포츠 강국을 과시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한 세기도 못돼 세계 스포츠의 중심축에 서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스포츠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전국체전이 있다. 전국체전을 통해 많은 선수들이 발굴됐고 체계적인 훈련으로 경기력을 높여 스포츠 강국을 견인했다. 전국체전은 한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국가적 스포츠 제전이었다. 지금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졌지만 고장의 명예를 걸고 출전한 선수들이나 이를 응원하는 국민들 모두가 하나가 되는 화합과 소통의 장이 전국체전이었다. 충남 일원에서 열린 제97회 전국체전은 충남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준 대회였다. 종합순위 2위라는 역대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어려운 여건을 딛고 성공 체전을 이끌었다는데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도민들은 너나없이 체전 준비에 힘을 보탰고 대회기간에는 아낌없는 응원으로 사기를 북돋웠다. 선수들은 지난 1년간 밤낮으로 흘린 땀과 노력을 고스란히 녹여내 역대 최고 수준의 성적을 일궈냈다. 메달을 땄든 따지 못했든 모두가 최선을 다한 후회 없는 대회였다. 준비 과정에서 보여준 참여와 화합, 그를 통해 얻은 값진 결과는 스포츠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했다. 그래서 모두가 승자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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