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회
사회부장
눈앞에 직선 주로를 두고 참 멀리도 우회했다. 정권이 약속하고 국민이 합의한 세종시 원안 추진이 그랬고,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3대 대형국책사업이라고 일찌감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던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 충청권 조성이 그랬다. 결론은 해피엔딩이었지만 과정은 험로 그 자체였고 여기서 유발된 고농축 피로감은 아직도 개운하다 할 수 없다.

마치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남의 밥그릇에 재를 뿌리거나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려했던 이들도 힘깨나 썼을 터다. 대의명분으로 보나 당위성으로 보나 세종시는 원안 가결이 정도였고, 과학벨트는 충청권 조성이 약속된 정석이었다. 그럼에도 악다구니하며 허리춤을 잡아 내린 그들 역시 밑진 장사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발칙한 생각을 해 본다. 세종시 궤도 수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당정의 변함없는 ‘수도권 프랜드리’를 각인시켰을 테고, 과학벨트 분산 배치 또한 지역 역량 결집과 기능지구 할당이라는 부산물을 얻었으니 말이다.

국토 균형발전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세종시와 국부창출의 새로운 보고(寶庫)라 할 수 있는 과학벨트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 이제라도 제자리를 잡게 된 것은 눈물겨울 만큼 반가운 일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할까. 과학벨트라는 이름만으로 덩실덩실 춤을 춰도 시원찮을 판에 오만가지 걱정이 나댄다.

우선 부지매입비 논란이 그렇다
과학벨트 선정 시점에 부지매입비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이 없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월아 네월아 하다 과학벨트 조성 사업 자체가 늦춰지는 낯익은 우(憂)를 범하지 않게 하게끔 확실하게 매듭짓고 가자는 목소리가 아직은 공허한 메아리 취급을 받는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국책사업의 부지매입비는 당연히 국가의 몫인 만큼 사실 논란거리도 못 된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 과학벨트 부지매입비 일부를 시행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어느 개인의 해괴망측한 논리는 입에 담을 필요도 없다.

“지나친 걱정과 노파심이 되레 과학벨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 “과학벨트 부지매입비는 당연히 국가에서 충당해야 한다”(남경필 한나라당 의원)는 정치권과 대전시 안팎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괘념치 않아도 될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어딘가 꺼림칙하다.
세종시 수정안이 대두됐을 때도, 과학벨트 분산론이 불거졌을 때도 늘 당정 혹은 유관 기관 인사들이 나서 친절하게 전주곡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연막전술이 이 정부의 특기라고 한다.

이번만큼은 정부를 믿고 싶다. 과학벨트 예산과 관련된 구체적인 실현계획이 마련될 때까지 우리 스스로 부지매입비 등의 논란을 뭉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충청권 3개 시·도와 정치권이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긴밀한 공조 아래 정부의 과학벨트 행보에 정통한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적어도 돌아가는 판세를 읽지 못해 뒤통수 맞는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벨트와 관련해 노파심이기를 바라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대덕특구법이 확정된 2004년 이후 대전이 받은 역차별이 그것이다. 당시 대전시 공무원들은 중앙정부에 현안 사업 예산을 요청하면 “당신들은 대덕특구가 있지 않느냐”며 찬밥 대우를 받았다고 푸념했다. 일각에서는 로봇랜드, 자기부상열차,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국책사업 경쟁에서 대전이 연거푸 고배를 마신 것도 대덕특구를 품은 원죄(?)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법을 제정해 대덕특구를 특별 관리하는 것이나, 과학벨트를 대전 등 충청권에 조성하는 것이나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다. ‘과학벨트의 자격’을 폄훼하거나 우는 아이 떡 하나 쥐어준 아량으로 갈음해 불이익을 주는 패착은 두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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