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레일(한국철도공사)가 목하 고심 중이다. 말 많고 탈 많은 KTX 때문인가 싶었는데 생뚱맞게도 노숙인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서울역을 무대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노숙인이 민폐를 넘어 ‘묻지마테러’까지 자행하는 통에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며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통첩된 조치는 잠자리 박탈, 노숙인들에게 ‘스위트 홈’인 역사에서의 야간 취침 행위를 금지한다는 게 골자다. 대관절 하루 30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할 일 많은 코레일이 노숙인들과 앞이 훤히 보이는 씨름을 선언했을까.
공사 측이 밝힌 민원 유발 양태는 악취, 구걸, 음주, 흡연, 소란, 폭언, 성추행 등이다. 급기야 아무 이해관계 없는 KTX 승객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살벌한 테러마저 일으켰다는 것이다. 2009년 49건이던 고객 민원이 지난해 87건으로 증가하더니 올 상반기에만 90건이 접수됐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용객 편의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코레일 입장에서는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게다.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가나 몇 가지 불편한 구석이 있다.
다중이용시설 내에서 노숙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눈총을 살 만한 일이지만 노숙인도 노숙인 나름일 텐데 상대적으로 선량한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취침 사절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그렇다. 한 겨울 부상당한 노숙인을 한데로 내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벌어진 곳이 서울역 아닌가.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테러위험 증가를 노숙인 방출(放黜) 이유로 들은 대목은 더욱 듣기 거북하다. 행색이 남루하고 볼썽사나운 일을 저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테러와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노숙인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기관과 긴밀히 협의하고 지속적인 대화 채널을 가동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지만 약발이 먹힐 것 같지는 않다.
대전만 해도 벧엘의 집 등 노숙인들을 시설에 입소시켜 보호하려는 착한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걸식과 한뎃잠이 몸에 밴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간다는 것이다. 싫다는 사람들 억지로 주저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고약한 악순환의 고리다. 몸을 함부로 굴리니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면역력이 약하니 객사하는 일도 허다하다.
외환위기는 숱한 서민들의 숨통을 조였고 이 땅에 노숙인을 양산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모든 것을 잃고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발버둥 칠수록 빨려 들어갈 뿐이다. 은행원이었던 사람,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사람, 교사였던 사람들이 노숙인으로 살고 있다. 그들 스스로 빌어먹는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오죽 못났으면 구걸을 하고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냐는 속 모르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면역력이 생겼다. 그러면서 어떤 식으로도 재기해야 한다는 의지는 희박해져갔다.
개인이 선택한 삶인 만큼 구태여 신경 쓸 것 있겠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노숙인도 엄연한 시민이다. 사회적 약자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더디더라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더디다. 머릿속으로는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몸은 습관처럼 거리 위에 걸터앉아 있다. 그들 중에는 탈출구에서 배회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시설로 들어가고 사회적기업 등을 통해 구겨진 삶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을 여럿 목격했다.
노숙인을 무작정 품자는 주장은 아니다. 노숙인이 면책특권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죄를 지으면 그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 스스로 자립 의지를 곧추세워야 하고 사회적 보호막도 연동돼야 한다.
코레일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단호한 대처는 대책이 수반돼 일부분 호환이 가능할 때 해도 늦지 않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