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에 충성 맹세 강요하던 용도

'폐기'-'쓰러트려 전시' 의견 팽팽

대전의 ‘쓰러뜨려 전시하는 일제 황국신민서사지주(皇國臣民誓詞之柱)’를 아십니까.
대전의 대표적 교육박물관인 한밭교육박물관내 황국신민서사지주의 존치 문제가 8월 광복의 달을 맞아 새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황국신민서사지주는 일제 강점기 당시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란 명목 하에 ‘일본왕(비석 원문은 천황)에게 충의를 다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강제로 외울 것을 강요하면서 전국 곳곳에 세워진 일제 잔존물이다.

아동용과 일반용으로 구분됐으며, 현재 한밭교육박물관의 주차장 옆 야외전시장에 놓여진 것은 당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강요하던 ‘아동용’이다.
비석 높이도 3m 가량에 달해 국내 잔존하는 황국신민서사의 비석 중에서도 대형에 속한다.

◆민족정신 말살 도구, 대전 도심에
대전 삼성초교 옆 한밭교육박물관내 위치한 황국신민서사지주는 당초 대전 산내초에서 발굴된 것을 이후 한밭교육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한밭교육박물관에 따르면 지난 1995년 대전 산내초에서 교사(校舍) 정비작업 도중 땅에 묻혀있던 황국신민서사지주가 발견됐다. 발견 당시 황국신민서사지주에는 누군가가 비석을 향해 쏜 다수의 총탄 흔적 등 일부가 파손돼 있었다. 이는 해방 이후 6・25전쟁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제 잔존물에 대한 청산이 산발적인 파괴 행위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땅에 묻어 폐기 처분됐다가 1990년대 교사 정비작업 도중 발견됐고, 교육당국 등은 지난 1997년 4월 4일 한밭교육박물관에 옮겨 일제강점기의 산교육으로 활용하고 있다.

◆‘폐기해야’ vs ‘홀대 전시’ 물밑 공방
대전 도심 한복판의 ‘황국신민서사지주’가 일제 잔재 청산 논란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된데는 민족정신 말살도구이자 치욕의 상징물인 일제 잔존물을 교육박물관에 존치하는게 맞는가란 타당성과 함께 현재의 전시방법에 대해서도 찬반론이 제기되면서부터다.

현재 한밭교육박물관의 황국신민서사지주는 정문 옆 주차장에 쓰러뜨려놓고 전시하고 있다.

이른바 전시를 하되 홀대하는 방식의 ‘홀대 전시’로, 황국신민서사지주를 이 같은 방식으로 전시하는 것은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밭교육박물관 관계자는 “치욕스런 것을 반듯하게 세워 전시해놓을 수 없는 상황이고 처리방법을 고민하다 쓰러뜨려놓고 전시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 같다”며 “현재도 이 같은 전시법에 대해 찬반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재로선 불편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게 최선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황국신민서사지주의 높이가 높아 세워 전시할 경우 박물관 정문 지주석보다도 높아져 자칫 박물관 상징물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도 이 같은 결론에 이른 원인 중 하나로 알려졌다.

◆청산없는 일제잔존물의 ‘딜레마’ 대전 근대건축물은?
대전은 일제강점 이후 도시가 발달하면서 일제 군국주의를 대표하는 일제 잔재 건물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대표적 경제침탈기구였던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옛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은 물론 안창호·여운형 등 수많은 독립투사를 투옥한 옛 대전형무소 터, 대전지역 대표적 탄압기구인 조선군 보병 30연대 3대대터, 헌병대 대전분대터 등도 남아있다.

지자체 등은 이들을 일제강점기에 대한 산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대전형무소 터 등 사실상 대부분 방치된 경우가 많다. 사회적 관심도가 갈수록 낮아지는 면도 있지만 해방 이후 일제 잔재에 대한 완전한 청산을 놓치고, 독도 문제 등 일본의 도발적 망언이 이어지는 점도 ‘보존’이란 개념을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남고 있다.

지역 학계의 한 관계자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부분이나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의 한 부분으로 파괴보다 보존과 반성, 역사적 교훈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본다”며 “일제강점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되짚고, 일제의 잔혹성에 대해서도 알려 일본인들 스스로 부끄럽고 반성토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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