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2

                                                     조 묘 순

어느 순간
다 내려놓고 싶은 농사일
땅에 목숨 걸고
어깨 빠지게 일을 하건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 살림살이
손과 발 다 들고 싶다

마음 한족은
외면하지 못할 땅과 흙
오뉴월 땡볕에 비지땀을 쏟아도
거북이 등짝이 되더라도
나를 기다리는 농작물들
그 모두가 내 자식들이니

때론 욕심의 노예로 괴롭다
잘라도 떼어내도 새살이 나오듯이
등떠밀어내고도 내가 먼저 손내민다
천년만년 땅 붙들고 씨름할 것같은 마음
그러니 어쩌랴, 어쩌랴

운명처럼 내려진 빗겨갈 수 없는 자기만의 삶이 있다. 눈만 뜨면 시야에 널브러져 있듯 무궁무진 벌어진 일들 앞에 자포자기 하듯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농삿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을까.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 농삿일이다.

조묘순 시인은 농사꾼의 아내이다. 농사꾼의 아내이기에 겪어야 할 일들을 작품으로 쓴 이 시는 조 시인의 첫번째 시집 ‘숨겨놓은 그리움 하나’에 수록된 작품이다. 조 시인은 충북 진천에서 출생하고 ‘문예한국’ 으로 등단한 이후 충남시인협회, 천안문인협회, 천안여류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바람의 깊은 곳을 더듬듯 가슴 뭉클하게 잡히는 순박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이 작품의 가치는 언제고 외면하지 못할 땅과 흙이 시인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세상사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가족이 존재하게 했던 흙을 고마워할 수밖에 없는, 날마다 들볶듯 달려드는 일상들이 짐이 되기도 하고, 오뉴월 햇살에 비지땀을 흘리고 거북이 등짝처럼 굳어올 때도 있지만 새살이 오르듯 다시금 붙들게 하는 힘이 흙에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농부의 아내로 살고 있는 시인의 이야기가 물에 젖듯 흥건히 적셔오는 것은 그의 삶이 그만큼 진실을 발판으로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농부의 가을은 남들보다 더욱 풍요로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영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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