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졸 채용시장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 고졸 채용을 격려하고, 지속적인 채용을 주문하고 나서면서 정부 부처는 물론 공기업과 대기업 금융권 등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부처로까지 고졸 채용이 확대되면서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은 채 변화를 거부했던 학력 차별 사회가 곧 붕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마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의미 있는 흐름에 모두가 쌍수를 들어 반기는 분위기며, 금세 학력파괴가 이어지고, 능력위주의 건전한 사회로 변화할 듯한 희망마저 품게 된다.
그러나 지금 사회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이 분위기는 대통령이 고졸채용을 장려하자마자 시작됐고, 요란한 대책이 마치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전개돼 왠지 모를 염려가 앞선다. 쫓기는 듯 달리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어지러울 지경이며, 이로 인한 부작용마저 우려된다.
열에 여덟이 대학을 진학하고, 대졸자들이 주도하는 대학졸업자 중심의 학력사회에서 고졸자가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려면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도 고졸 취업자들이 유무형의 수많은 차별을 경험하며, 힘겹게 생활하는 것이 현실이고, 사회는 차별을 완전히 철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또한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온 사회의 구성원 또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들만의 세상으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해온 고졸 사원의 처절한 몸부림은 물론, 그 과정에서 경험한 마음의 깊은 상처마저 짐짓 모른 채 외면하고, 방치해 온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먹기’로 채용 규모를 발표하며, 고졸 채용에 앞장서는 기관 또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앞을 다투어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두르다 실속 없이 낭패를 당하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는 시야가 좁아져 살펴야 할 것이 잘 보이지 않듯, 서두르면 놓치는 것이 많은 법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성원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학력차별을 없애기 위한 묘수 찾기에 차분히 머리를 맞대는 과정, 사회적합의가 우선됐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졸의 진입을 허용만 할 줄 알았지 기득권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차별 문화를 무너뜨릴 능력도, 준비도 되지 않은 이 사회는 정권이 바뀌면 꺼낸 것을 슬그머니 집어 넣어버리며, 옛날로 회귀할지 모른다.
고졸자가 4년을 근무하면 대졸자와 동등한 보수를 받게 한다는 등 이런저런 보완 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서둘러 나온 대안들인데다 근본적이 처방이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크다.
약도 준비하지 않은 채 처방전을 내 놓을 수는 없다. 처방할 약을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튼실한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해질 수 있도록 꾸준히 대안 마련과 보완을 거듭하는 자세가 함께 해야만 이번 학력차별철폐 바람은 사회의 그릇된 흐름을 바꾸어버리는 대세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고졸자의 성공을 두고 ‘고졸신화’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가능해지는 것이다.
고졸의 채용 바람이 대졸자들의 취업 기회를 상대적으로 박탈해버리는, 즉 ‘대졸자에 대한 역차별’ 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음을 주목해야 한다. 고졸 채용이 확대될수록 대졸자의 취업문은 덩달아 좁아져, 심각한 대졸취업난을 더욱 부추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다. 고졸 채용확대와 청년실업이 맥을 같이 하는 만큼 두 가지 모두를 해소하는 묘안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노력 또한 절실하다.
부디 이번 고졸채용 바람이 좀 더 차분하고, 진지하게 전개, 우리 사회의 고질병, 학력주의를 타파하고, 능력이 학력에 우선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개혁의 바람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