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회 사회부장

조금 된 이야기다.

“손님, 손님은 마음이 비워지십니까?”

멍하니 밖을 주시하던 내게 환갑 안팎의 택시기사님이 선문답 같은 질문을 건넸다.
갑작스럽고 생뚱맞은 상황에서 귀로 리비아 사태에 대한 뉴스 보도가 시계 초침소리마냥 또박 또박 들려왔다.

“하찮은 사람이 그리 쉽게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요. 노력은 하지만 당최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일이죠. 기사님은 그게 되십니까?”

“글쎄요. 이 나이 먹도록 잘 되지 않네요. 하기야 뭐 비우고 말고 할 것이 없으니까요.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는 법인데 제 분수를 알고 있으니 비우지 못했다고도 할 수 없죠.”

화제는 DMB에서 연신 거명하는 리비아 원수 무아마르 카다피 (Muammar Gaddafi)로 전환됐다.

“저 사람 말이에요. 30년인가, 40년인가를 해 먹었다고 하는데 무엇이 아쉬워 생난리를 부릴까요. 그 만큼 했으면 깔끔하게 물러날 법도 하건만….”

한 때 이슬람 세계에서 추앙받는 인물이었으나 오랜 독재로 민심이 극도로 이반됐고 국제사회도 등을 돌렸다는 식의 부연 설명이 침처럼 입에 고였으나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비춰질까 싶어 바로 삼켰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사람 한 둘이 아니니 남의 나라 사정에 손가락질 할 것 없네요. 어떨 때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이 사는 게 세상 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조 섞인 기사님의 몇 마디가 하루 종일 귓전을 맴돌았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순간순간 소스라칠 정도로 절감한다.

해탈의 경지가 아니고서야 이 험한 세상에서 속물이 어찌 마음을 비우고 산다는 말인가. 그래도 불필요한 군살처럼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속편하다는 데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동의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을 욕(欲)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상이 담긴다.

아흔 아홉 개를 가진 사람이 한 개를 가진 사람 몫을 빼앗아 백 개를 채우려 한다는 말이 있다. 일부의 극단적인 사례일 테지만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니 못 가진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고약한 습성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 돈을 불리고, 권력이 권력을 불리고, 명예가 명예를 불린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한 특권층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나 사실이 그렇다.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찬사는 그리 어울리지 않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공염불이다.

일반적인 개념인 허심(虛心)도 실천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잡념을 없애는 것도 녹록찮은 일인데다 세상사에 겸허하게 순응한다는 것은 웬만한 내공으로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비우라’는 권유를 받을 때 느낌표가 등골을 휘감는다.
덕담으로 치부해도 그만인 것을 혹여 측은한 조바심을 들킨 것은 아닌지, 마음을 비우지 못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 욕구와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찬 마음이 극에 달해 예기치 않게 불러오는 화(禍))를 알면서도 우리는 쉬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 인지상정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희로애락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허약해 빚어지는 병도 수두룩하다. 어쩌면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사회병리 (社會病理)도, 온갖 비리와 악행도 마음을 비우지 못한 탓이 크다. 치열한 세상, 아등바등 살면서 그래도 상기하면 약이 되는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가슴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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