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민심 누가 잡을 것인가?

전재구 논설실장
진시황이 죽고 난 후 한(漢)과 초(楚)나라의 한판 승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싸움이었다. 장기판은 이들 두 나라의 싸움을 묘사한 것이다. 한의 유방과 초의 항우는 진시황제가 쌓아 놓은 진나라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처절한 전투를 벌인다. 기원전 210년대의 일이다. 속된 말로 가문과 배경을 놓고 보면 유방과 항우는 거지와 왕 같은 신분이었다.

유방은 농부의 아들이며 술꾼에다 아가씨나 등쳐먹는 난봉꾼이었다. 이와는 달리 항우는 뼈대 있는 왕손이며 천하장사였다. 그러나 민심을 얻지 못한 항우는 결국 사면초가(四面楚歌)에 걸려 오강 물에 빠져 자결하면서 처절한 싸움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한(漢) 이라는 나라를 세운 유방은 흐르는 민심을 잘 읽어낸 인물이다. 애당초 그는 조그만 현의 말단 공무원이었다. 만리장성을 쌓는데 강제로 동원된 사람을 인솔해 가는 경비원쯤 되는 직책이었다. 인솔 도중 그는 노역에 참여했던 뭇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유방은 그들과 뭉쳐 함께 도적이 된다. 속된 말로 의적이 된 것이다. 그 후 그들의 리더가 되고 수많은 고초를 겪고 나서 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유방은 ‘민심은 천심’이라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삼고 싸움의 귀재 한신, 모사에는 장량같은 훌륭한 사람을 모아 대업을 이루게 된다. 역사가 보여 주듯이 민심은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것이다. 특히 민심은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변화의 갈망, 정치의 갈망, 현실의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해 민심은 저변에서 움직이는 법이다. 지금도 떠도는 민심은 머물 곳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의 신드롬도 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잘 보여 주었다. 누가 봐도 그의 행동은 한마디로 쿨했다. 참으로 영리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서울시장이 되기는 쉬울지 몰라도 성공한 시장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말솜씨도 일품이다. “높은 지지율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나를 통해 대리표현된 것 같다”라든지 “서울대로 돌아가겠다. 인생을 살면서 작은 신의라도 지켜야 한다는 게 나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모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 들이었다.

기존 정치인들을 하루아침에 쪼잔한 처지로 몰았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치고 박고 모질게 싸웠지만 이젠 허업(虛業)이 되어 버렸다. 몸 한번 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기득권과 오만함으로 보기도 역겨운 정치판에 신선한 아이콘을 던져준 것이다. 이제 정치도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띄어 보낸 것이다. 이대로는 모두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맞본 것이다. 이제 정치도 상품이 되어가는 추세다. 겉포장만 화려하게 한다고 해서 구매하지 않는다. 내용이 충실해야 팔린다. 허식을 벗어놓고 내려놓으며 힘 빼는 정치를 해야 한다. 달콤한 포퓰리즘과 복지카드로 손을 흔들어서는 씨알도 안 먹혀들게 됐다.

국민들은 배부르고 따뜻하면 정치에 관심이 없어진다. 살기가 고달프고 어려워질수록 정치에 민감한 것이다. 민심을 잡으려면 국민들과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 해야 한다. 지금 침묵하던 서민들이 ‘힘들어 못 살겠다’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금융소비자 단체들이, 18일에는 음식점 주인들이, 어제는 주유업소들이 이달 말에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거리를 ‘점령(occupy)’한다. 어지간해서는 불평의 소리를 내지 않고 조직화 되어 있지도 않은 서민들이 이제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연이은 집회에서 국내 금융자본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전셋값,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부자과세 등도 요구했다.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월스트리트 금융자본 규탄 시위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서민들의 이 같은 연쇄시위의 밑바닥에는 심화되는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과도한 수출지향적 정책으로 내수는 위축됐고 이는 결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벼랑 끝에 몰리게 했기 때문이다. 사회통합이라는 차원에서 수출이 최우선이라는 명제부터 재고해 봐야 할 시점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한 보궐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총선과 대선이 내년에 잇따라 치러진다. 결과가 어떻게 날지 관심거리다. 표 장사를 시작할 많은 선량들이 애태우는 계절이 도래하고 있다. 이제부터 누가 흐르는 민심을 휘어잡을지 눈여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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