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유대인’을 객가(客家)라고 한다. 중국의 다양한 소수민족 가운데 유대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유대인이라는 표현이다. 유대인과 같은 민족적 자부심, 끈질기고 도전적인 삶의 철학을 빼어 닮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화권 근현대사를 이끌어 온 쑨원, 뎡사오핑, 리콴유, 리카싱, 탁신(전 태국총리), 코라손(전 필리핀 대통령), 리덩후이(전 대만 총리), 마인주(현 대만 총리) 등이 객가들이다. 객가(客家)라는 사전적 의미는 중국 남부 광동, 사천, 후난, 장시 푸젠성 등에서 사는 주민들을 일컬는다.
유대인들에게는 ‘디아스포’라고 하는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다. 객가들도 비슷한 민족 대이동을 했다. 이들의 대규모 이동은 후한(後漢) 시대부터 천년 동안 진행됐다. 북방 이민족인 몽골, 만주족들의 잦은 침입에 못견뎌 북쪽에서 남쪽으로 탈출한 것이다. 송나라 때 처음으로 객가라는 말이 등장했다고 하니 그 역사와 전통은 유구하다. 당시 호적에 원주민은 주가(住家)라고 표기 했고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사람을 객가(客家)라고 표기 했었다.
남방에 정착한 객가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적극적인 개혁·개방을 주도한다. 타 소수민족들이 남방 문화에 흡수되거나 동화되었으나 객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근대에 개혁개방을 주도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광동 푸젠성 출신들인데 쑨원, 덩사오핑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객가들의 특징은 유대권력에 버금가는 파워다. 도전적이고 개방적인 성향에 단결력도 대단하다.
중국 남방뿐만 아니라 전 세계 상권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이 객가들이다. 한족에 대한 자부심과 교육열은 타의 주종을 불허한다. ‘태양이 비춰 지는 곳에 중국인이 있고,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객가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이들은 북방 한족의 풍습과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자기들의 문화와 관습을 지켜 내고 있다.
‘조상의 땅은 팔 수 있어도 조상의 언어는 버릴 수 없다’는 철저한 사상무장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객가인들은 지금 중국 본토에 6500만명, 홍콩, 대만에 650만 명 등 세계 도처에 8000여만 명이 산재해 있다. 이들은 지금도 정치·경제·문화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상권까지 주도적으로 이끌며 막강한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대만과 싱가포르는 객가들의 아성이다.
지금 나라 안팎이 무척 어렵다. 마치 격랑에 휩싸여 들고 있는 형상이다. 여야 정치권은 한·미 FTA타결로 한치 양보나 타협 없이 격돌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고에 대안 없는 젊은이들의 실업문제는 심각하다. 치솟는 전셋값에 1000만 원대를 육박 하는 대학등록금 등 난제 투성이다. 이럴 때 일수록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절실할 때다. 난국 일수록 국가와 기업들은 조직에 대한 강한 신뢰와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단결, 끝없는 도전의식과 자부심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객가들의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과 발전 방식을 우리도 모델로 삼고 도전해야 한다. 지역과 인맥으로 이권만을 챙기려고 하는 우리네 형편과는 그 본질 자체가 다르다. 세계적인 공황이 다가와도 객가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더욱 번성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과거에는 중국의 객가나 유대인들보다 더 강하고 개방적이며 도전적인 상인들이 많았다. 신라시대에 해상무역을 휘어잡았던 장보고가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유명한 개성상인들이 존재했었다.
그 맥과 정신을 되찾아 내야한다. 세계는 지금 보이지 않는 무역전쟁을 하고 있다. 총과 칼로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황금과 달러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야 국력도 신장되는 것이다. 찬란한 과거사는 역사의 한 페이지 일 뿐이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나라가 파산 직전에 놓여 있는 국가들이 수두룩하다. 로마시대를 일궈 낸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수렁에 빠져 있고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 같은 나라들이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반면 중국의 객가들은 세계 곳곳에서 용틀임을 계속하고 있다. 유럽에서 일궈낸 산업혁명 경제가 아시아로 이동하는 모양세다. 우리도 이젠 정신 바짝 차리고 세계 시장을 뛰어 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해외 동포 수가 700만 명을 상회하고 있다. 재외동포 경제사업연대인 한상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이들은 지금 세계 도처에서 땀 흘리며 뛰고 있다. 사막에서 북극에서 열대우림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의 유대인’이라고 불러져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판 객가(客家)들이 나서야 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