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회 사회부장
“저 같은 무지렁이도 그 양반들 하는 짓거리 보면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하는 일이 뭐 있습니까? 허구한 날 싸움질이나 하고….”

대전시의회 청사 건너편으로 가달라고 했을 뿐인데 택시 기사의 침 튀는 장황설은 그칠 줄 몰랐다. 누군가 멍석만 깔아주면 냅다 질러버리겠노라 진작부터 마음먹은 사람마냥 힐난조를 토해냈다.

개입할 틈 없이 이어진 아저씨의 불만을 정리하면 대강 이렇다.

‘시의회 건물이 따로 있는 것은 택시 기사 생활 수 십 년 만에 처음 알았다. 시의회 건물이 그리 클 필요가 있느냐. 구의회와 시의회의 차이는 무엇이고 둘 다 필요하냐. 국회의원들 정말 진상이다. 왜 피 같은 국민 세금으로 그 사람들 녹봉을 줘야 하느냐…’

목적지에 이르러 요금을 지불하는 순간까지 아저씨의 싸잡기 식 비난세례는 끊이질 않았다.
정치에 대한 ‘묻지마’ 불신이라는 생각에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 나오면 반응이 한결같아. 맹목적 불신이라고 할까. 어떤 사람들은 정치관련 기사조차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단정해버려. 그 게 현실이야. 적어도 우리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말이야.”

다국적 회사 해외 주재원으로 일하는 친구의 술안주다. 진짜 자신들이 보는 정치 관련 기사도 변죽만 울리는 허구냐는 것이 친구의 궁금증이었다. “아니다”고 잘라 말하면서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정치 불신의 무게를 새삼 절감했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 순간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직은 그들만의 계절이다.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진행됐고, 대권을 향한 잠용들의 날갯소리가 점점 요란해진다.
때 이른 출사표라고 여길지 모르나 누군가의 무자맥질은 조용히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안타깝게도 매서운 날씨만큼이나 민심은 싸늘하다. 누가 우리 지역을 위해, 우리 나라를 위해 일하겠노라 자진해서 손을 들었는지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 먹고 사느라 곁눈질조차 주지 않는 것인지 운전기사와 친구를 통해 들은 불신의 오만인지 단정할 수 없으나 현실이 그렇다.

정치인 중에는 나름 소신과 철학이 뚜렷한 이들이 있다. 민생을 돌보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정치라는 틀 속에 뒤엉키면 개개인의 노력은 사장되거나 함몰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마치 정치라는 블랙홀이 솎아 쓸 만한 정치인들마저 빨아들여 평균 하향화시키는 꼴이다. 민심이 정치를 싸잡아 비난하고 정치인이라는 명함을 손부끄럽게끔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데 국민들이 정치로부터 피로감을 느끼고 심지어 욕지지가 난다면 분명 심각한 문제다. 사실 우리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상실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정치 잘 한다’는 평은 ‘경제 잘 돌아 간다’라는 이상((理想)만큼이나 입에 담기 어렵지 않은가.

불신을 잉태한 것은 불통이라고 본다. 말로는 민생, 민생 떠들면서 정작 국민들이 바라는 민생은 뒷전에 미뤄두고 패권다툼에나 쌍심지를 켠다. 민심에 귀 기울인다며 정작 국민들의 호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로 민심에 가다간다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여권은 여권대로, 야권은 야권대로 새 틀 짜느라 진통을 겪었다. 아니 진행형이다. 그 밥에 그 나물 비벼봤자 싸구려 비빔밥이겠지만 터질 지경인 불통 시그널의 수위를 조금이라도 낮춰보겠노라는 각오라도 다져주기 바란다. 그것이 쇄신이고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은 손가락질 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저도 정치를 싫어합니다만 한 번도 투표를 빠뜨린 적은 없어요. 할 일은 해야 국민들이 무서운 줄 알 것 같아서요.”

택시 기사 아저씨가 유권자 혁명의 밀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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