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건시민상 수상 소식 이튿날 숨져

이정림 씨가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캐나다 석면 수출 반대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석면 암에 걸렸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대전의 석면공장 인근에 거주하다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돼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뒤 석면추방운동에 온몸을 바친 이정림(46) 씨가 지난 21일 경북 김천에서 끝내 숨졌다.

이 씨는 고등학생이던 지난 1981년부터 1984년초까지 대전 서구에 거주했다.

당시 그가 거주하던 곳에서 2.9㎞ 떨어진 곳엔 국내 최대 규모의 석면슬레이트 공장인 벽산 슬레이트 대전공장이 있었다. 또 1991년 결혼 후 대전에 정착한 그는 2년동안 벽산슬레이트 대전공장과 900m 떨어진 중구 모 아파트에서 신혼의 꿈을 키웠다.

자녀들을 키우며 희망을 일구던 이 씨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지난 2006년.

서울삼성병원을 찾은 이 씨는 자신의 복막과 흉막에 석면노출질환인 악성 중피종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악성중피종은 주로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돼 걸리는 치명적 암이다.

이 씨는 지난해초에야 환경보건시민센터를 통해 자신이 석면 슬레이트 공장 인근에 살았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악성 중피종으로 사망한 주민이 2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에게 치명적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생산공장이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이 씨의 분노는 석면추방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씨는 석면피해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각종 석면 관련 행사에 동참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국제회의에 참석, 국제사회에 한국의 석면 피해 실태를 알렸고, 같은 해 12월에는 아시아시민대표단의 일원으로 캐나다를 방문, 캐나다가 아시아 지역에 석면을 수출해 온 데 대해 항의하고 석면 생산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의 결과로 정부는 지난해 3월 석면 질환 피해자를 구제하는 석면피해구제법을 제정, 올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며 이 씨도 지난 3월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이 씨는 병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지난달 14일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국제회의에 참석했다.또 지난 20일에는 국내 환경단체들이 제정한 환경보건시민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상을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

시한부 삶을 살던 그는 수상소식 이튿날 숨졌다.
국제석면추방사무국(IBAS) 등 국제 환경단체들은 이 씨가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석면 피해자로서 석면 추방운동에 인생 마지막을 바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잇달아 보내왔다고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전했다.

서이석 기자 abc@ggilbo.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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