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초상화 중 '흑단령포본' 초상화 연구 학술가치 높아
또다른 영정 '시복본'은 후손이 수원박물관에 기증

대전지법과 국립부여박물관 등에 따르면 충남 청양 출신인 번암 채제공(1720-1799)의 영정을 놓고 후손들간 영정인도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채제공의 직계손인 채 모 씨가 현재 채제공 영정을 소유하고 있는 문중의 채 모 씨를 상대로 영정인도를 요구하는 소송을 지난해 7월 대전지법에 제기한 것.
이번에 소유권 분쟁 대상이 된 채제공 영정은 체재공 3대 초상화인 시복본(時服本·1792년작), 금관조복본(金冠朝服本·1784년작), 흑단령포본(黑團領袍本·18세기 후반작) 가운데 ‘흑단령포본’이다.
흑단령포본은 체제공이 오사모에 쌍학흉배의 흑단령포를 입은 ‘전신의좌상’으로, 현재 국가보물(1477-3호)로 지정된 국보급 영정이다.
초상화를 그린 이명기(李命基·1756-?) 선생은 조선 후기 최고의 초상화가이자 ‘당대국수(當代國手)’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이명기의 채제공영정 일괄(시복본·금관조복본·흑단령포본)은 조선후기 문인 초상화의 각종 유형을 다 갖추고 있고, 유지초본까지 전해져 조선시대 초상화 연구에 학술적 가치도 높다.
실제 채제공 직계 후손이 지난 2006년 수원 박물관에 기증한 채제공 선생의 또 다른 영정인 시복본은 약 2억 원대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채제공 영정을 둘러싼 법적다툼은 직계손의 영정 소유권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정인도를 요구하고 있는 직계손 측은 직계 후손인 점을 들어 당연히 영정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현재 영정 소유자인 채 모 씨 측은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직계 후손 측이 흑단령포본 영정을 매각한 것을 알고 이를 되찾아 보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직계손의 소유권 주장은 억지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영정을 취득한지도 이미 50년을 넘어 시효 취득했다는 게 영정 소유 후손들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과거 채제공‘시복본’이 경기도 수원박물관에 기증된 전례를 고려할 때 영정 소유권이 직계손에게 넘겨질 경우 채제공의 고향인 대전·충남지역에 남아있는 흑단령포본과 금관조복본도 타 시도로 넘어갈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채제공 영정을 둘러싼 소송은 대전지법 민사13부에 배당돼 지난해 10월과 11월, 12월 3차례 변론기일이 열린데 이어 오는 3월 16일 4차 변론을 앞두고 있다.
흑단령포본은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기탁 보관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부여박물관 관계자는 “흑단령포본은 지난 2001년 도강영당(道江影堂) 명의로 부여박물관에 기탁된 뒤 2006년과 2009년말 각각 일시 해지됐다가 2010년부터 현재 소유자 명의로 재기탁됐다”며 “영정은 보관하기 힘들고 훼손될 우려가 있어 보존시설을 갖춘 박물관에 기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부여박물관은 영정을 임시 보관 중인 상황으로 후손들의 소유권 분쟁에 대해 뭐라고 답할 입장이 못된다”며 “기탁해지 요청이 있을 경우 현재로썬 기탁자에게 영정을 되돌려주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번암 채제공(1720년·숙종46-1799년·정조23)은 충남 청양군 화성면 구재리에서 태어나 조선 영정조때 남인계 영수로 영의정에 이르렀다. 영조때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로, 화성성역 총리대신을 맡아 수원화성 축조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채제공 출생지인 청양군 화성면 구재리에 그의 사당인 상의사(商義詞)가 있으며, 경기도 용인에는 정조가 직접 지은 ‘채제공뇌문비’가 있다.
서이석 기자 abc@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