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 파견’으로 규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사내하청 근로자가 들썩이고 있지만 이번 판결의 파장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사내하청과 파견근로를 규정짓는 하나의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파장이 확산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도급과 파견의 경계를 가르다
2002년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한 최 모(36) 씨는 노조활동 등을 이유로 2005년 하청업체에 의해 해고되자 원청업체인 현대차가 실질적인 고용주이기 때문에 해고 처분이 부당하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7년간의 소송 끝에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최 씨와 근로계약을 맺은 업체가 실질적 회사가 아니라 원청회사(현대차)의 영향력에 있고 근로자에 대한 지휘감독권도 마찬가지로 원청회사가 갖고 있었다고 봤다. 원청업체의 지시에 따라 일한 최 씨의 경우 원청과 하청업체의 도급 계약에 따라 하청업체의 근로자로 일한 게 아니라 사실상 파견근로자로 일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보호법의 적용을 받았어야 했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제조업에선 ‘근로자 파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사내하청’ 방식을 통해 파견법의 규제를 피했던 완성차업계의 관행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번 판결로 현대차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사내하청 비율이 울산공장의 경우 23.5%, 전주공장 25.1%, 아산공장 34%에 이르는 현대차는 사내하청 근로자의 근로방식을 재조정해야 한다. “사내하청제도를 즉각 폐지하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즉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노조의 압박뿐만 아니라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의 범주에 포함시켜 전체적인 근로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정부의 방침(주야2교대제 개선안)과 맞물려 신규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부담도 함께 안고 있다.
◆‘사내하청=불법 파견’ 일반화는 무리
이번 판결을 계기로 노동계는 ‘사내하청=불법 파견’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켜 ‘비정규직 철폐’의 원동력으로 삼을 계획이지만 녹록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내하청 방식을 운용하는 대부분의 업계는 ‘이번 판결은 사내하청의 경계(지휘감독)를 뛰어 넘은 사례에 대한 것일 뿐 사내하청의 근간을 흔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보고 있다.
동희오토와 현대파워텍·모비스 등 충남 서부지역 자동차 제조·부품 판매업체의 경우 관리직을 제외하곤 100% 사내하청업체를 통해 움직이는 만큼 다툼의 소지가 적고 자동차제조업종보다 사내하청 비율이 더 큰 현대제철·동부제철 등 철강 기업들도 자동차 생산라인과 달리 업무 분야가 확실하게 나눠져 있는 만큼 이번 판결에 따른 파장이 크게 미치진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동부제철 관계자는 “일단 사내하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온 만큼 참고해야 할 것 같다”며 “사내하청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을 통해 분쟁의 소지를 없애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사내하도급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이번 판결은 개별 사안일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사내하청에 대한 대안 마련 보단 사내하청 안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