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구 논설실장

김지하의 오적시(五賊時)는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하면서 폐간, 구속 등 수난을 당했었다. 시의 내용을 보면 그럴만도 했다. 당시 권력을 휘두르는 고위층들과 재벌 등의 모습과 현실을 너무 적나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높은 양반들이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시인은 ‘서울 장안 한복판에 재벌, 국회의원, 장성, 장차관, 고급공무원 다섯 도둑이 살았다’며 사회 상층부의 부패성을 신날하게 꼬집어 나간다.

<국회의원>
조조 같은 가는 실눈, 가래 끊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혁명공약 모자 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우매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리 비켜 서랏 냄새난다. 퉤, 골프 좀 쳐야겠다.

<재벌>
재벌 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에서 빚낸 돈, 온갖 특혜 좋은 이권, 모조리 꿀꺽. 이쁜 년 끼어 첩 삼아, 밤낮으로 적신작신 새끼 까기 여념 없다. 귀띔에 정보 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 못 잡고…

그 당시 국회의원들은 혁명에 동참해야 했고 골프를 치며 자기들의 위상을 높였나 보다. 그때도 국민들이 보내준 국회에서 일은 등한시하며 자기들만의 잔치판을 벌였었다. 재벌들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권력에 빌붙어 돈 벌기에 몰두하며 자기들만 즐긴다. 국민들은 단지 ‘오적들’을 위해 개미같이 일 할 뿐이다. 세월은 흘러 강산이 수차 변했는데도 권력과 재벌의 공생관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은 돈이 남아돌아 환호하는데 비해 중소기업과 소상인들은 위기에 처해 생존권 사수를 부르짖고 있다. 양극화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화두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너도나도 내가 양극화를 타파하는 적임자라며 표를 구걸하고 있다.

인간은 어떤 일을 할 때 명분을 만들어 낸다. 명분은 자기합리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사항이다. 정치꾼들도 출사표를 던질 때 명분을 만들어 낸다. 명분을 대등소이 하지만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을 강조한다. 참으로 대단한 출사 명분이다. 처음 출마 때는 그랬다가 당선돼서 국회로 가면 안면몰수다. 내용도 변질돼 말 바꾸기가 다반사다. 누구 말대로 처음과 끝이 영 딴판이다. 이러니 누가 정치인을 믿겠는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위해 열심히 자기 임무를 열심히 일하는 믿음직한 국회의원들도 많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흙탕물로 바꿔놓는다. 때론 언론에 뭇매를 맞기도 한다. 억울함도 있을 것이다. 공인이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우스갯소리가 있다. ‘정치꾼과 돼지가 한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어느 것부터 구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정치꾼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냥 놔둬서는 한강물이 심하게 오염되기 때문이란다. 국회의원들에게는 권한과 특혜도 많다. KTX는 무제한 이용 가능하고 선박과 항공기도 무료승차 할 수 있다.

금 배지 하루만 달아도 수백만 원에 달하는 연금도 평생 받는다. 일반 국민들이 직장생활 30년을 하면서 국민연금을 죽어라 부어도 100만 원도 못 받는 사람들에 허다하다. 서민들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만 큼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한 번 맛본 사람은 두고두고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린다. 국회에서 행한 어지간한 말은 처벌대상도 아니다. 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폭로나 정책 질의를 할 때 두더지 때려잡기로 마구 말을 쏟아낸다. ‘아니면 말구’, ‘카더라’ 라는 식이다.

나이 불문 하는 월급쟁이들의 평생직장은 없다. 정치인들에게는 퇴직연령 제한도 없다. 죽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은 정치뿐이다. 단, 조건이 붙는다. 뽑아줘야 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기들끼리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선거만 없다면 정말 할 만한 직업인데….”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넉살도 좋아야 하지만 예리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국회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은 우선 자기부터 깨끗해야 한다. 자기 주변정리도 못하는 사람이 나라 일을 하겠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특히 호구지책으로 이 길을 나섰다면 지금 당장 그만 두는 게 옳은 선택이다. 공천에 탈락됐다고 아쉬워 할 것도 없다. 오적(五賊)에 끼지 말고 이참에 다른 길로 나서라. 희생과 봉사정신 없이 나섰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바둑이나 두고 낚시터나 다니기를 권한다. 높은 도덕적 양심과 타오르는 사랑의 정열을 갖고 국민을 섬겨야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자격이 있는 것이다. 코앞에 선거일이 다가 오고 있다. 누가 적임자인지 심판은 국민들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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