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정치사는 좌우 대립의 역사이다. 해방 이후 역사를 되짚어보면 부단히도 좌우의 대립과 갈등은 이어져왔다. 때로는 이념적으로 때로는 지형적으로 좌우가 갈려 공방을 주고받는 정치형태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좌익 또는 좌파라는 개념은 1792년 프랑스 국민 의회에서 의장석의 왼쪽에 급진파인 자코뱅당이 의석을 차지했던 것을 어원으로 한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수적 성향의 집단을 우익 또는 우파라고 칭한다. 다른 어느 나라에도 좌우의 대립은 있게 마련이지만 이 나라 대한민국처럼 극심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탁통치를 놓고 찬탁과 반탁이 갈려 극한의 대립을 펼친 것을 시작으로 사사건건 좌우의 대립은 이어졌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국시였던 시절에는 섣불리 좌 편향적 발언을 한 마디라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60년대와 70년대는 국민 누구랄 것 없이 한 치의 진보적 사고나 언행이 용납되지 않던 시절이다. ‘빨갛게 빨갛게’라는 가사가 삽입돼 있다는 이유로 국민가요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이 될 정도로 당시 한국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80년대 이후 이 땅에 소위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민중들은 투쟁을 통해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를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식인들과 고학력 직장인, 대학생 등을 중심으로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를 보장받겠다며 철옹성이던 반공 지상주의의 벽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30여 년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진보적, 개방적 사고와 행동이 한 발씩 허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기화로 각 캠퍼스에서 학생운동이 들불처럼 번졌고, 더불어 진보적 사고도 급속 확산됐다. 일방적인 우측통행이 종지부를 찍고 좌측통행도 허용되기 시작하면서 이념적 대립양상은 심한 성장통이 찾아온 것도 이 무렵이다.
이 때 민주화 열풍에 힘입어 손과 발이 묶여 있던 정치인들이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됨녀서 소위 3김(김대중, 김종필, 김영삼)시대가 열렸다. 3김 시대의 개막은 지역주의 정치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3김 정치가 시작되며 이념적 좌우의 대립은 지역적 좌우의 대립으로 변모됐고, 극심한 지역주의는 20여 넘게 지속됐다. 지금도 지역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극심했던 시기와 비교하면 많이 탈색된 것이 사실이다. 이 시기에는 지역감정이 이념 대립보다 우선했고, 정치에서 정책이란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제19대 총선이 목전에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지역구도가 궤멸하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이념구도가 종전보다 강화되는 느낌이다. 다만 조건 없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이라기보다는 복지 수혜의 대상과 방법에 대한 시각 차이 등으로 대립하는 양상이 강해졌다. 과거에 비해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도 극우나 극좌를 자칭하는 세력들은 상대 진영의 사고를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있다. ‘수꼴’(수구 꼴통)이니 ‘좌빨’(좌파 빨갱이)이니 하는 등의 용어를 앞세우며 벽을 더욱 높이 쌓아가려 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좌우 콤플렉스가 더욱 심해지는 것은 각 후보들이 논리적으로 이해를 구하고 정책으로 유권자들을 설득시켜 나가는 것보다 이념을 자극하는 것이 훨씬 파괴력이 강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기간 내에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에도 부족한데 정책을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후보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손쉽게 표심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이념적 색깔을 전면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영향력 있는 유력 대권 후보에 기대어 인기에 편승하려하거나 전직 대통령의 사진 뒤에 숨어 향수를 자극하려는 등의 방법을 통해 표심을 자극하려 하고 있다.
세계에서 대학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지대한 나리인 대한민국의 선거가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고무신과 막걸리를 선거판에서 몰아내는데 50년이 걸렸다. 그러나 70년이 지나도록 좌우 콤플렉스는 떨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를 좌우 콤플렉스의 졸업식으로 치르면 어떨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정책선거, 인물선거를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