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유독 성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입으로는 경쟁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무엇을 평가하고 등수를 매겨 서열을 정하는 데 익숙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우수보다는 최우수를, 버금보다는 으뜸을 선호하고 열광한다. 애국심과 애향심의 발로일까. 경쟁 무대가 세계라면 대한민국이, 전국이라면 대전과 충남이 우월하기를 바란다. 물론 1등이거나 상위권이어서 우쭐할 만한 항목에 한 해서다. 비교 평가 대상이 자살률이나 실업률처럼 듣기에도 거북한 것들이라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대전이 ‘평균 이하’라서 아쉽고 손부끄러운 지표가 하나 있다. 투표율이다. 최근 20년간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대전은 단 한 번도 전국 평균 투표율을 상회한 적이 없다.
제14대 대선 80.3%(전국 평균 81.9%), 제15대 대선 78.6%(80.7%), 제16대 대선 67.6%(70.8%), 제17대 대선 61.9%(63.0%), 제15대 총선 63.0%(63.9%), 제16대 총선 53.3%(57.2%), 제17대 총선 58.9%(60.6%), 제18대 총선 45.3%(46.1%), 제1회 지방선거 66.9%(68.4%), 제2회 지방선거 44.5%(52.7%), 제3회 지방선거 42.3%(48.8%), 제4회 지방선거 49.4%(51.6%), 제5회 지방선거 52.9%(54.5%) 등의 투표율로 마뜩하지 않게도 늘 전국 평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
충남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나 적어도 지방선거 투표율은 전국 상위권을 유지했다.
대도시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다는 점을 십분 감안해도, 먹고 살기 힘든데 참정(參政) 타령이냐고 해도, 정치 불신이 선거 무관심을 유발한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투표율이 다른 도시보다 낮다는 사실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권리행사 포기를 정당화할 만한 명분은 쉬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숫자놀음일 수 있다. 그까짓 투표율이 뭔 대수라고 전국 평균 운운하며 누워 침 뱉기 식의 타박을 하느냐 할 수 있다.
투표율은 누군가의 강요나 강압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못된다. 오롯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으로 빚어내는 소중한 권리행사의 영수증이다.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그 만큼 국가와 국민에게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잠시 잠깐 투표소를 찾아 우리 동네 정치를, 우리 지역 정치를, 우리나라 정치를 바로 세우는 밑돌을 놓고 오면 그만이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다보니 정치 염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빙하기와 같은 경기 불황의 터널이 참 길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정치와 정치인을 싸잡아 업신여기는 것을 당당하게 여긴다.
욕먹을 만 하다고 치자. 그 밥에 그 나물, 뽑아놔야 달라질 것 없어 진저리난다고 치자.
그럴수록 꼼꼼한 선구안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후보의 손을 들어줘야겠다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권리를 행사하고 나무라도 나무라야 온당하지 않겠는가. 무슨 무관심이 자랑인 양 행동하는 것도 욕먹는 정치와 그리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손가락질도 자격이 있는 법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잘못했다면 표로 심판하고 그래서 민심 무서운 줄 알게 하고 더디지만 우리 정치가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과 실천을 연동(聯動)해야 한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 알 만한 사람들은 정치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를 뼈저리게 알 것이다.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정치가 바로 설 때 제 자리를 잡는다.
선거는 잘 익어야 할 정치의 씨앗과 같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 한 표가 씨앗을 여물게 할 양분이다.
제19대 국회의원을 뽑는 4·11 총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만큼은 금배지 제대로 뽑자는 이심전심이 널리 유통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유권자 혁명의 디딤돌을 놓고 ‘투표율 전국 평균 이하 도시, 대전’이라는 오명을 씻는 계기가 되게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