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이념이라는 주춧돌 위에서 주행한다. 국가의, 사회의, 가정의 교육관이라는 슬하에서 발아하고 성장한다. 특히 머리가 다 여물기 전에 빨아들인 올바른 가치는 뼈와 살이 돼 인격을 형성한다. 웅숭깊고 실팍한 교육관이 나라의 미래와 맞닿는 이유다.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치켜세우며 부담 지울 요량이면 교육관부터 튼실해야 하는 법이다. ‘누구를’이 아닌 ‘누구나’를 보듬는 교육, 더불어 인성을 도야(陶冶)하고 나를 존중하며 남을 배려하는 민주시민 양성소, 세종 교육은 그런 그릇이다. 여기에 그의 교육관이 투영돼 있다. 투박하지만 속이 차 있고 잔잔하지만 힘차게 물결치는 세종 교육의 파수꾼, 최교진 교육감을 만났다.

#. 모두가 존중받고 행복하도록
공교육의 소임은 모든 아이들이 존중받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게 그의 소회다.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실현되지 않는다는 데서 공교육의 어깨는 늘 무겁다. 세종 교육의 주파수는 그 공교육이 소임을 다하는 데 맞춰져 있다.
“공교육은 모두를 위한 교육입니다. 그런데 산업화 시대 이후 오랫동안 지식 암기나 문제풀이 능력으로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고 앞에 있는 아이들만 존중하고 뒤에 있는 아이들은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게끔 교육을 해 왔습니다. 저는 한 반에 25명이 있다면 1등부터 25등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아이가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잘 하는 것에서 1등인, 25명의 1등이 있는 교실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 한 아이가 저마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또 그 아이들이 서로 돕고 함께 배우면서 성장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돕는 일, 공교육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에 공동체가 나서고 있다는 것은 마침맞은 조합이다. 행복교육지원센터는 그 상징과도 같다. 이는 아동·청소년에게 필요한 체험학습 및 방과후 활동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세종시와 세종교육청이 협력한 연계 허브기관이다. 세종시 산하 복합커뮤니티를 활용해 마을 학교를 더 크게 배양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 이념이 일치한 교육과 지방자치는 세종을 각종 무상교육 시리즈의 산실로 지폈다. 왜 세종을 두고 온 마을이 학교라고들 하는지 이해된다. 어디 이뿐인가. 촌로들도 손재주 펼치며 손주들과 소통한다. 이처럼 마을 학교는 더불어 빚어내는 세종 교육의 표식이 됐다.
“교육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 이뤄지던 시대는 80년대에 끝났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모든 곳이 배움터여야 하고 교과서가 아닌 어른들이 갖고 있는 경륜·경험·지혜가 가장 큰 교재라는 것, 마을 학교의 출발은 거기에 있습니다. 할아버지를 통해 새끼 꼬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전통을 익히고 어른들은 애정과 사랑이 생기게 됩니다. 공동체 전체에 이로운 일이죠. 도시와 마을공동체가 맞댄 세종의 강점입니다.”
세종시교육청 담장엔 ‘학교는 시민이 탄생하는 곳’이라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민주시민에 대한 그의 지론이 읽힌다.
그가 세종 교육을 이끌어온 6년의 시간, 숱한 ‘최교진 키즈’가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대견한 일이다.
“‘생각하는 사람, 참여하는 시민’이 교육 지표입니다. 특히 나보다 우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줄 아는 시민이 돼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기르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이 아닐까요?” 민주시민 교육의 가장 기본은 본인을 소중히 여기는 데 있습니다. 자존감이죠. 모든 아이들이 자존감을 갖고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친구들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할 줄 아는 게 민주시민 교육의 전제고 출발이라고 믿습니다.”
#. 고교 평준화 “우려는 기우였다”
2020학년도 대입수시 결과, 고교 평준화 첫 세대들의 입시성적이 ‘혹시나’ 하며 근심하던 세종교육을 웃게 했다. 찬반 논란 속에 닻을 올렸던 만큼 명분을 뒷받침할만한 추진 동력이 필요했던 게 사실이었는데 우려를 기우로 돌려세웠으니 오죽 기특할까.
“세종시 일반고 학생들이 2020학년도 대입 수시전형에서 꽤 좋은 성적표를 내놨습니다. 특히 3년 전 고교평준화를 처음 맞이한 학생들의 대입결과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이번 수시에서 수도권 주요 대학, 이공계 특성화대학, 지방 국·공립대, 교육대학 등에 합격한 세종시 일반고 학생은 모두 1157명으로 전년 대비 283명 증가했죠.”
학교별로 고른 결과를 거뒀다는 점이 특히 고무적이다. 토끼 두 마리를 다 잡은 셈이다.
“꾸준한 일반고 역량 강화 사업과 캠퍼스형 공동교육과정 확대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불어 연 초 대입지원을 위해 연구개발팀, 학력관리팀, 학생상담팀을 새로 꾸리고 데이터 기반 진로진학 컨설팅을 통해 대입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학생, 학부모들과 폭넓고 발 빠르게 나눈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세종 일반고가 고교 평준화정책과 혁신교육을 디딤돌 삼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앞으로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배움으로 꿈을 키우고 대입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 꿈에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진로진학에 더 진력하겠습니다.”
평준화 위에서 당당해진 세종 교육은 ‘누구나’를 더 지향할 수 있게 됐다. 세종 교육의 간판인 ‘혁신’에 안정적인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얘기다.
“혁신 교육은 소통하면 성공하고 만족한다는 단순한 원리의 이름입니다. 학교구성원, 특히 세종 교원들은 교육과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합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통해 국가수준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창의적 교육과정으로 디자인해냅니다. 학교운영 역시 일방적 권한 행사가 매우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통계청 중·고등학교 ‘학생 학교생활만족도’에서 전국 평균 58%보다 10.3%나 높은 68.3%의 만족도 결과, 12월 세종교육만족도 조사에서 전년 대비 평균 5.8%P 상승한 70.5%의 만족 이상 성과를 보더라도 혁신교육의 성과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혁신 교육의 진화는 계속된다. 학교 자치와 학생 개별 성장 지원에 방점을 찍겠다는 게 최 교육감의 의지다. “학교가 학생, 교원, 학부모의 창의성과 의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학교 자치를 보장·지원하고 교육청 전 부서가 이를 일관되게 지원할 겁니다. 학생들은 지식을 넘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것이며, 그 방법은 학생의 속도와 방법을 보장하는 것, 기본학력을 책임 교육하는 것, 역량을 평가해 진학과 진로를 지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 교육 자치의 꽃은 학교 자치
최근 최 교육감이 우리나라 교육 자치의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한 마디로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고 진단했다.
“교육부를 탓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유은혜 부총리도 최대한 학교에 대한 권한을 시도교육감에게 넘겨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노력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법령적인 문제 등 총론에서 선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과연 현장이 교육 자치를 받아들이고 소화할만한 준비가 돼 있는지를 짚어봐야 합니다. 교육 자치의 주체는 학교입니다. 교육 자치의 꽃이 학교 자치라는 의미죠.”
교육 자치를 실현하자면 현장은 국가 교육과정과는 별개로 학교 실정에 맞는 학급 교육과정도, 창의적 교육과정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역량을 배양해야 하고 교육청은 교사들이 교육 자치에 근접할 수 있도록 과외 업무를 줄여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다. 달갑잖게도 그저 여러 모순적 괴리 중 하나일 뿐이다.
“예를 들어 고교 학점제를 시행하면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과목이 꽤나 많을 겁니다. 수업과 교양은 다르잖아요. 교사들이 최소한 두 과목 정도는 전문적으로 가르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녹록하지 않습니다. 교사들의 고민이 그만큼 큰 겁니다. 고교 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는 2025년이 그리 멀지 않은 상황에서죠.”
결국 교육 자치가 안착하기 위해선 정부와 교육청, 학교가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는 것 아닌가? 교육 자치의 꽃을 피우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꽤나 복잡하고 까다로워 보인다. 세종 교육의 강점은 이럴 때 발휘되는 거다.
#. 세종 교육의 힘
세종은 젊고 역동적인 도시다. 이를 교육이라는 프레임에 적용해 보면 입맛이 다양하고 소비자들의 욕구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기요인이 새로운 도시의 생장점과 한 배를 탄 격이다. 이를 어떻게 소화해 마진을 내느냐가 교육의 책무다. 이 대목에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발상의 전환이 녹아 있다.
“시민들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고 특히, 혁신과 미래 교육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높습니다. 강한 참여의지로 교육관련 시민그룹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학교를 돌아보면 수직적 학교문화가 해체되고 소통에 기반 둔 민주적 학교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젊고 역동적인 교사 문화도 우리의 강점입니다. 그 문화 속에서 혁신교육 리더 교사들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진로진학교육을 중심으로 고등학교 교육이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고 드디어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행에 얽매이지 않은 혁신적 교육행정도 우리의 강점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강점과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 바로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강점과 기회는 곧 약점과 위기가 될 것입니다.”
강점과 기회에 매몰되면 발전은 없다. 약점과 위기를 방치하면 몰락한다. 현재를 잘 파악하고 내일을 제대로 내다봐야 경쟁력에 근육이 붙는 법이다.
“시민들이 교육정책과 단위학교 운영에 적극 참여하는 교육 자치, 학교 자치의 정신을 살릴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운홀 미팅, 정책 모니터링단 운영 등 교육청 주요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시민사회와 학부모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왔습니다. 학부모회, 학생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시민들과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함께 고민할 겁니다. 특히, 올해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새로운 미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시대적 질문에 답을 내놓겠습니다. 교육행정에서 누수가 발생하지 않고 시민들의 일상에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과거와 미래, 희망을 논하다
교육감으로서 지난 6년의 시간은 그에게 값지고 소중하다. 신념을 이고 지고 달려온 세월이 썩 요긴한 든 자리를 만들었고 안주할 새 없이 또 다른 도전이 세종 교육을 기다리고 있다.
전국 최초의 숲 유치원을 개원하는 등 전국 유아교육을 선도했고 지난해에는 유아로부터 고등학교까지, 기초학력에서부터 대학 진학에 이르기까지, 튼튼한 학력을 갖출 수 있는 기초학력 안전망과 고교 교육력 제고 방안을 만들어 시행했으며 걱정을 산 고교 평준화는 개운하게 연착륙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설한 캠퍼스형 공동교육과정은 가장 혁신적인 교육정책에 선정돼 진가를 인정받았으며 마을 학교는 울타리 없는 교육협력의 모범 답안이 됐고 선도적인 무상 교육 시리즈는 세종의 간판으로 접착됐다.
“세종시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도시이고 매년 확장되는 도시이다 보니 학교와 교육을 빠르게 안정시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시행착오가 없었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가진 교육력과 행정력을 끌어 올리며 동시에 학교를 조기에 안정시키는 데 전력을 집중했습니다. 다행히 세종시민들께서 믿고 기다려 주셨고 그 결과 우리의 교육력과 행정력도 성장했습니다. 특히, 고교 상향평준화 이후 세종시 고등학교들이 편차 없이 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는 좀 더 다듬고 좀 더 기름칠 할 뿐 올해엔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래교육체계의 초석을 다지고 학교 혁신 프로그램 평가 도구를 만들어 가겠다고 곁들였다.
“우리 아이들이 더불어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유능하고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것이 될 성 부른 공교육 존재의 이유인 것을.
대담=이인회 편집국장·인터뷰 유상영 기자·사진 함형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