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格式)을 차린다는 의미를 상대를 통해 촌평해본다면 하나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며, 나머지는 격식을 차리는 자신의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다. 예(禮)를 지켜 상대를 맞이하고, 상대를 존중하면 상대의 존재는 크고 존귀해지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도 함께 그 격 속에 묻혀 동질화되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국가 간의 격식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흔히 외교라고 하는 이 국가 간의 격식은 까다롭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상대 국가를 충분히 예우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다방면의 존중과 배려는 국제사회에서 국격(國格)의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외교가의 격식은 오랜 세월을 통해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채 다소의 불편과 비용을 감소하면서도 짐짓 정도를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공사(公私)를 불문, 이 격식도 어느 정도의 절제를 요구하고 있어 지나쳐도, 부족해도 서로에게 결례가 되며, 바람직스럽지 못한 방향으로 귀결되기도 한다.선남선녀의 신성한 결혼은 무절제한 격식 차리기로 인해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다. 과도한 격식 요구로 고가의 예물이 오가야만 하는 허례허식의 각축장이 되어버리고, 이로 인한 양가의 갈등으로 혼사가 파국으로 치닫는 예도 다반사다.사교 모임은 물론, 지기(知己)들의 편한 회동 등에 흔히 등장해 분위기를 돋우는 데 크게 일조해 온 포도주도 이놈의 격식 때문에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포도주 바람이 불더니 ‘포도주 잔은 목 부분을 잡고 마셔야 온도가 영향을 받지 않아 맛있으며, 잔을 가볍게 흔들면서 마셔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규칙들이 소개됐고, 사람들은 그 격식에 따르느라 꽤나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된다. 희귀한 고급 와인의 품평회도 아니고, 더구나 포도주 감별사가 평가를 하는 자리도 아닌데 너무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다 보니 기분 좋게 즐겨야 될 술자리가 지나치게 딱딱해지고, 불편해져 흥이 깨지는 개운치 않은 뒷맛이라고나 할까.정작 포도주의 본고장 프랑스 고위 관리가 잔의 둥근 부분을 쥐고 편하게 건배를 청하고, 우리는 불편하게 목 부분을 잡고 어려운 자세로 건배하는 모습을 연회장에서 목격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이 폭염 속 에너지 절약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가 나서 공공기관 및 민간 대형 에너지 소비업소 등에 대해 강력한 지침을 마련, 실내온도를 규제하기 시작했다.이로 인해 학교 등 일부 기관의 경우 더위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에너지절약운동이고 보니 모두들 참고 견디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캠페인의 효과적 결과 도출을 위해서라도 먼저 우리 사회의 격식파괴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경직된 격식이 살아있는 고위 공직자, 정치인들의 모임에서 그 답을 찾았으면 한다.많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TV 등 매스컴을 통해 등장하는 주요 기관 및 정당, 고위 공직자의 회의 모습은 여전히 지금이 여름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솔직히 그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 항시 정장 차림의 회의여서 그 모습만으로는 사시사철 어느 때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풀면 체감온도를 2도가량 낮출 수 있고, 이를 냉방에 적용하면 연간 수백억 원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하는데도 왜 아직도 이런 모습이 등장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외교적 예의가 필요한 국가 간 회의가 아니라면 하절기에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푼 모습은 격식에 어긋난 것이 아니다. 한 기관의 상하 직원 간에 오히려 겉옷까지 갖추고, 넥타이를 맨 회의가 격식에 맞지 않은 차림새이다.무더위에도 불구, 정장을 차려입은 근엄한 회의모습은 예부터 청와대를 비롯한 고위 기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의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터라 차가울 정도의 냉방은 필수였지만 지방자치단체 등 산하 관공서는 그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는지 기꺼이 따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청와대를 위시한 정부 부처, 정당 등 공공기관부터 솔선수범해 간편한 옷차림의 회의를 갖자. 이러한 모습이 좀더 많은 곳으로 전파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대중의 답습효과는 클 것이며, 에너지도 기대 이상으로 절약될 것이다. 필요한 격식은 꼭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격식에 맹목적으로 얽매여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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