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구 논설실장

“눈에 뵈는 완장은 별 볼일 없는 하빠리 들이나 차는 거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아!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거 봤어? 완장 하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주워 먹는 핫 질 중에 핫 질이 완장인 게여!”

독특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 주었던 작가 윤흥길은 유명한 소설 ‘완장’에서 술집작부 부월의 입을 빌려 하찮은 권력을 휘두르며 으쓱대는 세태를 통렬히 비웃는다. 이 소설 완장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몰이를 했었다.

백수 건달이던 주인공(영화 이대근 분)이 동네 저수지관리인이 되면서 완장의 끗발은 시작된다. 낚시도 못하게 하고 오염된 저수지를 빼 내려 해도 감히 막을 자가 없다. 완장을 채워준 사람조차 무시한다. 부월이의 애틋한 사랑(?)으로 도피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완장은 누가 차고 있을까? 대통령일까? 장관, 검찰총장, 대법원장, 경찰총수, 나는 감히 보이지 않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한사람 한 사람이 각기 색다르고 다양한 완장을 차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치러진 총선의 결과도 그렇다. 누가 완장을 차고 누가 완장을 빼앗겼는지 숙고해보면 답이 나온다.

나만이 옳고 될 수도 없는 헛공약을 내세운 후보자들은 대부분 피를 보았다. 이게 민심이다. 아무리 꿈같은 복지를 쏟아내도 국민들은 이제 속지 않는다. 누가 진솔하며 국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달래줄 사람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만 하는 정치, 공약만 남발하는 정치에 쐬기를 박은 것이다.

어째 됐거나 이번에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진짜배기 완장을 차지했다. 국정을 잘 보살펴 달라는 엄숙한 주문을 받은 것이다. 이젠 좀 달라지기를 국민들은 절실히 바라고 있다. 지역주의도 많이 사라졌으며 해묵은 이념 싸움도 이젠 장막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젠 완장=권력이요. 권력=돈이라는 생각을 즉시 버려야 한다.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거나 검은 커넥션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킨다면 또 다른 패자로 전락한다. 국회의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하늘이 내려준 소명인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새 의원들에게 완장을 채워 주었으니 이참에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지금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몹시 팍팍해졌다. 엥겔계수가 2005년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소비지출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은 다른 부분에 소비할 여유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생활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0%였는데 식료품물가는 8.1%나 올랐다. 저소득층의 빈곤화로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서민들의 삶에 주름살을 펴 줄려면 생활물가가 안정돼야 한다. 수차 정부에서는 행정지도를 통해 뛰는 물가를 잡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우선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주길 바란다. 선거 내내 부각됐던 복지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재정이 뒷받침 되지 못하는 복지는 불가능 한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성장 역시 공동체의 통합과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 한정된 복지지출비를 잘 파악해 효율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누구에게나 같은 복지혜택을 주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장애인연금처럼 도움이 절실한 약자부터 혜택이 가도록 배려하는 일이 긴요하다. 독일, 스웨덴, 영국 등 유럽복지강국도 ‘보편적 복지의 축소’ 선별적 복지의 강화를 통한 효율 높이기에 치중하고 있다. 뭐라 해도 최상의 복지는 역시 일자리 창출이다. ‘생산적 복지’의 으뜸은 역시 일자리 마련이다. 청년백수 문제나 베이붐 세대 명퇴 등에 따른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 복지혜택을 바라는 계층에게 자립심을 심어주고 역량을 키워주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복지 대안이다. 정치가는 “말로 살고 말로 망한다”고 한다. 한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기 어렵다.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길 바란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그러나 존경받는 의원은 기억에 별로 없다. 그들은 의원 배지를 차고서도 할 일을 제대로 못 했다. 잘한 일보다는 권력과 재벌과 한 통속이 되어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이번에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진솔한 마음으로 당부한다. 별 볼일 없는 하빠리 완장이 아니라 진짜배기 완장의 저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