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부장
“가재는 게 편이라고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원체 말썽 피우는 아이였어요. 참다 참다 얼굴에 손 지검을 한 것이 화근이 됐죠. 학부모가 학교로 득달같이 쫓아와 체벌한 생활주임 선생에게 날벼락을 치는데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내가 설 자리가 아니다 싶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직서를 썼습니다.”
30년 여 년 동안 청춘과 열정을 받친 교단을 그 선생님은 그렇게 떠났다고 했다. 아이들에게서 존재의 이유를 찾았던 터라 회한이 물밀 질만 하건만 붕괴된 교권에 짓눌린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제 손 거친 아이들 생각하면 절로 뭉클해집니다. 그래도 명예퇴직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여자 선생님들 아이들 상대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눈물 쏟아내는 게 요즘 교단입니다. 차마 그 현실을 일일이 전할 수 없을 따름입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에 보는 이들이 더 안타까운, 천생 교사의 30여 년 희로애락이 과연 누구로 인해 회의의 늪에 빠졌는지 이 땅의 자화상에 마음이 먹먹하다.
교사 초년병 시절 아이들과 함께 손으로 눌러 쓴 빛바랜 학급문고 한 권이 그의 아린 가슴 속에 훈장처럼 박제돼 있을 뿐이다.
스승님 그림자는 밟지도 말라 했다. 가정방문 나오신 선생님에게 멀건 설탕물이라도 한 대접 내어드리며 공연히 ‘자식 맡긴 죄’를 고하곤 했다.
그 선생님도, 그 부모님도, 그 제자도 사라지고 이제 없는 듯하다.
굴곡의 인생, 등대처럼 길라잡이 해 주신 은사님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해 준 은사님, 못난 제자에게 “넌 훌륭한 사람이 될 재목”이라며 용기를 주신 은사님, “삶이 고달프더라도 하루 한 번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져라”며 어깨를 토닥여주신 은사님,…….
그렇다고 모든 선생님을 존경한 것은 아니다. 백 번을 양보해도 도저히 사랑의 매라고 용인할 수 없을 습관성 폭력 교사도 있었고, 능수능란하게 아이들을 차별대우하는 교사도 있었다. 그들로부터 배운 교훈은 아무리 쥐어짜도 기억에 없다. 보통명사 ‘선생님’으로 그리움을 끄집어내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은사님들이 주신 감동이 큰 모양이다.
요즘은 어떤가. 연세 지긋한 선생님들은 후배 교사들을 걱정한다. 각광받는 직업인지라 시험 성적이 우수한지는 몰라도 갈수록 샐러리맨이 되고 있다는 노파심이 크다.
교사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으로 여긴다는 잔소리 속엔 흔들리는 위상에 대한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훈계는 씨알도 먹히지 않고 교사를 향한 학생들의 폭언과 폭력은 웬만히 쇼킹하지 않는 한 일상처럼 무뎌진 데다 학부모들은 제 자식 귀한 줄만 알고 안하무인인 현실 속에서 또 한 번의 스승의 날이 다가왔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식 맡긴 죄’를 곱씹고 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믿고 싶다.
학생들의 인권이 중시되는 만큼 선생님들의 교권도 중시돼야 한다. 선생님들을 무시한다면 무슨 기운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물론 상식 밖의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교사들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소수의 문제로 교직사회를 도매금으로 품평하는 것은 매우 저급한 짓이다. 능력의 무게를 떠나 선생님들을 신뢰해 그들이 신명나면 누구에게 혜택이 가는지 구태여 주판알을 튕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방학이 싫다고 하는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을 볼 수 없는 방학이 너무 싫다며 만날 투정을 부린 아이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반 아이들 상당수가 ‘선생님 앓이’에 시달렸다고 한다. 대관절 아이들에게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인지 궁금해 뵙기를 청하자 그 선생님 부끄럽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제 아무리 세월이 되바라져도 교단엔 은사들이 있다. 소심하게 외쳐본다. “대한민국 선생님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선생님의 '그 한 말씀'으로 울고 웃고,
한편 그것에 매달려야(매달리고자) 하는 초조하고 절실한 마음 또한
가지고들 있는게 현실이겠지요.
교사가 아닌 스승을, 학생이 아닌 제자를
생각하게 하는 스승의 날이고
떠 오르게 하는 글입니다.
'기사'보다도 수필같은 이부장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