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매력에 빠진 청년 지난 6월 첫 작품 첫선

‘젊다는 게 한 밑천’이라는 다소 자조 섞인 오래된 유행가 가사가 있다. 세월은 지났어도 그 의미는 현재를 관통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요즘 대학가의 풍경이 그렇다. 빙하기에 비유되는 취업난으로 젊은 청춘들은 ‘판박이 도서관 살이’에 함몰된 느낌이다. 꿈을 좇기 보다는 보다 안정된 직장을 찾는 세태를 나무랄 수 없다. 젊어 고생 사서하는 경우는 이제 개인의 취향 정도로 취급받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스물네 살의 CEO, 노인호(목원대 화장품학과 4년) 씨를 주목하는 이유다. 그는 국내 최초 향수 전문 잡지 코ː파르팡(CO-PARFUM) 편집장이다. #1. 향(香)에 미치다코ː파르팡이 세상에 첫선은 보인 것은 지난 6월이다. CO-PARFUM은 함께를 의미하는 접두사 ‘CO’와 향수의 불어식 표현 ‘PARFUM’의 합성어로 ‘다함께 향수를 즐기자’는 뜻이다.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당장의 반향은 미미하지만 향수라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낸 시도가 눈에 띈다. 무엇보다 코ː파르팡은 국내 향수 전문 잡지 1호다.“잡지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이 지난해 10월이니까 8개월의 산고 끝에 나온 겁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결단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험난한 길인 줄 알았다면 언감생심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어릴 적부터 뷰티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노 씨와 향(香)의 운명적인 조우는 지난해 여름 한 패션매거진 강의로 거슬러 올라간다.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향과 향수의 무궁무진한 시장 개척 가능성을 봤고, 우리나라 향수문화의 저변화를 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단다. 그 때 한 스승을 만난다. 지금은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는 송인갑 씨. 일찍이 향에 심취하고 도전했으나 시대를 잘못 만난 그의 스승은 노 씨를 될 성부른 떡잎으로 보고 접어 뒀던 꿈과 열정을 제자에게 쏟고 있다. “관심이 많았다고는 하나 초보적인 수준이었어요. 지금도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조향사까지는 아니어도 향을 감별할 수 있는 감각도 키워야 하고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눈도 있어야 하고……. 향을 제대로 맡으려면 후각이 살아있는 이른 아침이래야 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 6시면 기상합니다.”그의 좌충우돌 도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2. 고집스러운 청춘고등학생 무렵 그는 미용에 눈을 떴다. 미용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의약계열에 진학하길 바랐던 부모님에게 막내아들의 외도가 달가울 리 만무했다.“부모님 모두 약사이십니다. 제가 그 길을 따라주길 바라셨는데 엉뚱한 미용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었으니 속깨나 썩인 꼴이죠. 미용 관련 일을 하는 데 대학 졸업장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으니 더욱 그랬을 겁니다. 결국 보다 못한 부모님이 찾아주신 양자 접점이 화학계통인 화장품학과였습니다.”그는 목원대 화장품학과 1기생이다. 학과의 특성 상 여학생이 대부분이지만 워낙 뷰티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적성에 잘 맞았다. 자연스럽게 화장품 제조법과 메이크업 등을 배웠다. 미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잠시 헤어숍 스텝으로 일하기도 했다.“중학생 때 해외유학파인 사촌형이 한 집에 살았어요. 향수를 알게 된 계기죠. 어린 나이였지만 각양각색의 향이 참 좋더라고요. 향수를 직접 뿌리고 수집했습니다.”그의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사춘기 시절 호기심은 군 제대 이튿날 향수전문교육기관 등록과 함께 본격적인 향 탐구로 이어진다.“화장품은 기능성이라면 향수는 예술일 수 있습니다. 아직 국내 향수 관련 시장이 초보 수준임을 감안하면 미래 가치 측면에서 도전해 볼 만한 분야라고 판단했습니다.” #3. 블루오션의 선두두자를 꿈꾸다그의 말마따나 우리나라 향수의 소비층은 두텁지 않다. 코ː파르팡의 주 타깃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여성으로 삼은 것도, 9월호 발행 후 계간지에서 격월지로의 전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려 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그에게는 향수의 대중화라는 확실한 꿈이 있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 데 서양인들의 향수 취향이 ‘나만의 향기’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향보다는 브랜드를 선호합니다. 개성을 살리면서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향을 발굴하고 싶어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향의 세계라면 분명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한마음 한뜻으로 사고(?)를 친 10명의 코ː파르팡 식구 중 그 보다 어린 사람은 단 1명뿐이다. 지금은 무보수로 일한다지만 콘텐츠 하나하나에 보수를 지급하고 싶다. 훗날을 생각해 지분과 출자도 설계해 놔야 한다. 전문지로 승부를 걸 만한 콘텐츠 개발도 급선무다.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어린 CEO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덤벼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기적으로는 전국 판매를 통해 향(향수) 관련 산업의 붐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는 향수 문화 저변화의 매파가 되고 싶습니다. 무모한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차츰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요. 열심히 뛰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갈 길은 멀다. 그래도 젊다는 게 한 밑천임을 보여주는 당돌한 청춘의 도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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