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친척보다 낫다는게 이웃사촌 이웃나라 일본, 매번 고통만 안겨
과거사 반성없는 한 화해 먼 얘기 독도 도발 적반하장 이제 그칠 때
이영호 본사 총괄국장
이웃은 멀리 있는 친척보다 낫다고 했다. 사이가 좋을 때 얘기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다. 가까이 있다 보니 희로애락을 같이 한다. 궂은 일이 생기면 자신의 일 같이 함께 걱정하고 위로한다. 또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같이 즐거워한다. 이웃은 이 같이 슬픔은 함께 나눠 줄이고 좋은 일은 나눠서 기쁨을 배가 시킨다.
그뿐인가 이웃 간에는 정이 넘친다. 별미라도 있는 날에는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담 너머로 양푼이 오가기도 한다. 또 우리 집에 부족한 것은 얻어다 먹고 남는 것은 나눠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웃은 곁에 있는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그러나 입에 혀 같은 이웃도 사이가 나빠지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고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즉 없는 것보다 못한 이웃이 되고 만다.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목소리는 높아지며 쌍소리가 오간다.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이웃 간 주차문제로 인한 칼부림 사건,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분쟁 등이 신문 사회면을 심심찮게 장식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이웃이기는 하지만 사촌은 아니다. 사이가 아주 안 좋은 이웃이다. 얼마 전 런던올림픽 축구경기에서 일본이 먼저 4강에 진출했다. 이후 우리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일본은 하필이면 한국이냐고 푸념을 했고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결승에 진출하지 못할 경우 3·4위전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예상대로 상황이 전개되자 이번엔 일본은 한국은 일본만 만나면 전력이 30%정도는 상승한다며 우려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동메달은 우리가 차지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일본만 만나면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한 때는 일본 원정에서 지면 현해탄에 빠져 죽으라고 말할 정도였다. 조상대대로 너무나 많은 피해를 당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슴에 맺힌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의 이런 아픔을 외면한다. 진심을 담은 사과로 아픔을 치유해 주는데도 인색하고 뉘우치지도 않고 있다.
게다가 틈만 나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종군위안부 문제나 강제노역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한다. 특히 지난 21일에는 일본의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위안부가 폭행이나 협박으로 일본군에 끌려갔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럼 자청해서, 기꺼이,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말인가. 자신의 누이나 어머니가 피해자라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섣부른 독도 방문으로 일본에게 빌미만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첫 방문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반발이 거센 점도 없지 않다. 추후에도 현직 대통령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문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구더기 무서워도 장을 담가야한다. 일본의 항의가 무섭고 반발을 우려해 할 말을 못하고 할 일을 못하며 살 수는 없다.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우리 땅을 마음대로 오갈 수 없다면 그 곳은 더 이상 우리 땅이 아닐 것이다. 일부러 자극할 필요는 없지만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면서 우리의 영토임을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
이웃이 이웃사촌이기를 포기했는데 언제까지 우리만 이웃사촌 대접을 해 줄 수는 없다. 이웃이 이웃답지 못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이웃사촌은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