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직업을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혹시 사명감을 떠올리는 그대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줄 만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에서의 직업은 그저 밥벌이 수단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빙하기에 비유되는 취업난이 아니더라도 언제부터인가 투철한 직업관이 요구되는 자리마저 스스로를 월급쟁이로 폄훼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교단에 ‘나는 가르친다 고로 존재한다’를 설파하는 이재석 반석고등학교 교장. 그의 교육철학이 학교 담장을 넘어 우리 사회를 훈계하고 있다.#1. 마음의 양식을 퍼주다“한 끼 식사보다 마음의 양식을 선물하는 것이 더 뜻깊다고 생각해요. 이론적으로는 준비돼 있을지 모르나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 선 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거든요.”그는 후배 교사들에게 책 선물하기로 유명하다. 교감 승진 후 새내기 교사들에게 ‘선생님 되심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친필 사인과 함께 ‘스승’(오천석 著)이라는 책을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1년에 한 권이 두 권 이상이 됐고, 교장이 되고부터는 교사는 물론 학교 행정실 직원들에게까지 마음의 양식을 퍼주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명강의 노하우(Know how) 노와이(Know why)’ 등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교수학습의 새 장을 살펴보는 내용이 주류인데 한 권 한 권마다 책갈피에 친필로 명언을 새겨준다. 선물할 책을 고를 때 마냥 행복하다는 그는 수천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독서광이다.장서마다 ‘양서는 진리의 샘터, 독서는 교양의 원천’이라고 새기고 별도의 도서번호를 부여하는 습관에서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는 느낌이 풍긴다.“책에 관해서는 욕심을 부리는 편입니다. 옛 시절 월부 책 외판원들이 특별히 관리하는 큰 손 고객이었죠. 말을 물가로는 데려가야 한다고 봐요. 물을 마시고 마시지 않고는 선택의 문제죠. 책을 받은 후배들이 한 구절이라도 읽어주면 그것이 보람입니다.”‘Reader가 Leader된다’는 것이 지론이고 보면 그의 손을 탄 학생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2.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교장(敎場)느리울중학교와 관저중학교, 그리고 반석고등학교. 최근 몇 년간 이 교장의 궤적이자 아름다운 전통을 식재해 놓은 공간이다.느리울중학교에서는 ‘누리마루(세상에서 으뜸 되기)’ 운동을 펼쳤다. 장래 희망하는 분야에서 으뜸이 되자는 것이 골자인데 롤 모델을 정하고 그를 탐구하며 닮아가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꿈을 설계하도록 인도했다.관저중학교에서도 변형된 ‘청소년전문가 학위수여제도’를 통해 숱한 중학생 학사, 석사, 박사를 탄생시켰다. 그들만의 학위일지는 모르나 이 역시 꿈을 키워주는 고단백 영양제로 평가받았다. 반석고등학교에서는 ‘있어야 할 때에,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모습으로 있는 위대한 반석인’을 입버릇처럼 주창한단다. 고등학교인 만큼 학력신장과 인성함양을 위한 목표를 저마다 설정하게 한 뒤 자천을 거쳐 분기별로 시상하고 있는데 제법 약발이 먹힌다는 후문이다. 작업복 차림으로 교내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그의 모습은 박제된 일상이다. 권위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 스스로 교장(校長)이 아닌 교장(敎場)으로 활동한다.“교장을 한글로 풀어보면 학교의 어른입니다. 전 학교의 어른이 아니라 가르치는 마당 즉 교육의 장을 펼치는 매파이고 싶습니다.”#3. 교육신자(信者)로서의 삶그의 직업관에는 교육신자로서의 삶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본능적인 밥벌이, 사회적 역할 수행, 사명감, 존재의 이유라는 ‘이재석 식’ 직업의식 4단계를 교사에 대입하면 이렇다.밥벌이를 하되 잘 가르쳐야 하고, 성스럽게 애업(愛業), 근업(勤業)해야 하며, 가르침 자체를 존재의 이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교사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인격체로 성숙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을 창조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부끄럽지만 전 스스로를 교육신자라고 생각합니다. 직업 중의 직업이고 귀한 직업이죠. 교육은 위대하며 저는 부족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후배들은 청출어람의 본보기가 돼 주길 바랍니다.”‘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이라는 서산대사의 시를 가슴에 묻다 못해 설상초보(雪上初步)라는 제목까지 붙여 자주 인용하곤 한다. ‘눈 덮인 벌판을 걷더라도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지나간 흔적이 뒤따라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느니’라는 뜻인데 교사란 자고로 이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교육에 중독된 신자의 올곧은 신념이다. #4. 가르침의 새 장을 열다가르침의 재해석도 흥미롭다.가르치다는 ‘갈다(학문과 인력을 갈고 닦다)’, ‘가르다(선과 악, 시와 비 등을 구분하다)’, ‘치다(장점, 소질 적성을 키우다는 의미와 부정적인 것을 베어내다는 의미의 중의적 표현)’를 함축해 담고 있다는 주장이다. “‘가르치다’에 이 시대 교육의 나아갈 길이 내포돼 있습니다. 교권 침탈이네, 공교육 붕괴네 하지만 강물이 흐르면서 정화되는 것처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 옳습니다. 헤집거나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임용고시가 인기인데 몸과 마음을 교단에 던지겠다는 자세부터 가다듬어야 합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책임져야 하니까요.”내 인생의 스승을 떠 올려 본다. 마음 한 귀퉁이에 남겨주신 주옥 같은 가르침이 연신 되새김질을 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