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실장
“사람의 술의 양(量)은 얼마나 되느냐”고 우등생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도 술을 몹시 좋아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웃으며 한 마디로 대답했다.
“주무량 불급난(酒無量 不急亂)”이라고- ‘술에는 양이 없다. 다만 마신 후 난잡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술에는 한도가 있기 마련이다. 술 냄새만 맞아도 취하는 무주가가 있는가하면 말술을 마다하고 마시고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애주가도 있다. 술은 신(神)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다. 훌륭한 성직자들도 술을 찬양하거나 제자들과 함께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회식자리에 술이 빠져서는 의미가 없다. 노래방이나 룸살롱에서 술은 필수다. 술 취하면 흥이 솟고 평범한 여자도 미인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시성 이태백(李太白·701~762)도 술 취해 강 물속에 보이는 달이 너무 아름다워 껴 안기위해 물에 뛰어들어 익사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술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무기가 된다. 어쨌든 술이 없으면 유흥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술은 인간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생활음료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난 후가 항상 문제가 된다. 음주운전은 살인이나 마찬가지인 데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술 때문에 패가망신을 한 사람도 있다. 주변에 알코올중독자도 수 없이 많다. 술 때문에 직장을 잃기도 하고 각종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천하장사 장비도 술 때문에 부하한테 어이없게 목이 달아났다. 10여 년 전 만 해도 술 많이 마시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 공직자들이나 회사원들도 술을 잘 마셔야 출세할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술 예찬론을 늘어놓기도 했다. 술 많이 마시고 다음날 출근 멀쩡히 하는 게 우상이 될 정도였다. 술 때문에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봐주는 게 그 당시의 세태였다. 지금도 술 많이 마시고 나서 “필름이 끊겼다”느니, “전혀 기억이 없다”느니 하면 어느 정도 용서를 받는다. 술 때문에 사고를 치고 재판을 받을 때도 ‘술 잘 마시는 판사를 만나면 처벌이 관대해진다’는 농담 반 같은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술 마시고 잘 못을 저지르면 용서가 다 되는가? 웃기는 이야기다. 말실수나 헛소리 정도는 너그럽게 봐 줄 수 있어도 한계가 넘으면 처벌을 받는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위정자들이 술 때문에 헛소리 마구 내뱉어 망신당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술 취해 일 벌려 놓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평생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도 많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나주 초등학생 엽기적 성폭행 범인 고 모(23) 씨도 범행 동기를 “술김에 그랬다”고 변명했다. 용서 받지 못할 일을 벌여 놓고 술 핑계를 해 댔다. ‘박카스신’이 웃을 일이다. 하루가 멀다 않고 술취한 취객이 파출소를 마구 때려 부수고 큰소리친다. 이유 없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묻지마’ 폭행을 가하는 취객도 있다. 술자리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살인까지 벌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폭탄주를 마시고 진짜폭탄으로 변신한 것이다. 술의 힘을 빌려 하고 싶은 일을 해대는 사람도 많다. 온전한 정신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술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어떤 의사표시를 한다는 것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술이란 기분 좋게 마시거나 우울할 때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을 때 마시면 더 좋아 질 수 있고 나쁠 때 마시면 더 나빠 질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술을 마신 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남을 칭찬할 말 만 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술 마시고 노래하며 즐겁게 춤을 춰야 할 때 사람을 해코지하고 뭇 사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주취는 중요한 범죄다. 공자도 즐겨 마셨다는 술을 비난 하거나 나쁘게 보는 사람은 없다. 술과 함께 즐기며 사는 게 인생의 낙(樂)인지도 모른다. 지나치면 넘친다는 말이 있다.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즐겨야 한다. 경기가 나빠서인지 우리네 살림살이가 좋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추석 명절이 성큼 다가와 있다. 모두들 풍요로워야 할 추석이 별반 달갑지 않은 표정들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잘 되는 일이 없다”며 술 취해 코 쳐 박고 세상 한탄하는 이웃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술기운에 살 수 없잖은가? 술 마시고 난(亂) 해지면 안 마신 것보다 못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