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청량제 같은 소리로 맴맴거리며 음악을 선사하던 매미에 대한 추억은 아름답게 남아있다. 어릴 적부터 동네 어귀나 인접한 산 어디를 가든 하동들을 반겨주는 합창은 뒤를 이었고, 코맹맹이 소리로 매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걷는 신나는 노정은 하루해가 지나는 줄 몰랐다. 노랫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무더운 날씨를 노래를 벗 삼아 초월하는 듯 참 여유가 있어보였고, 옥 굴러가는 듯한 소리도 감치는 맛이 여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 일찍 시작된 지리한 무더위 속 집 주변 나무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는 어릴 적 추억과는 사뭇 판이했다. 마치 소음처럼 귓전을 울렸기 때문이다. 물론 어릴 적 즐겨 듣던 매미와는 종류도 달라 소리 자체가 변한 것도 이유이겠으나 단순히 종류가 다른 것만이 원인은 아니었다.더위를 쫓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려면 바람과 경쟁이나 하듯 어찌나 그 소리가 시끄럽게 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던지 창을 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결국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열대야에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 바람에 매미라는 놈에게 은근히 미운 감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초저녁 잠깐 울고, 잠잘 시간에는 침묵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희망도 들어줄 상대를 보고 품으라고 했던가. 어찌 태어난 매미인데 나 잠 못 잘까 울음을 그쳐 주겠나 생각하니 미움도 잠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들 몰라서 그렇지 매미란 곤충의 삶을 잠깐이라도 살펴보면 누구나 이런저런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여름철 대표 곤충으로 상징되기도 하는 매미는 태어나면 열흘 정도의 생을 즐기고, 삶을 마감한다고 한다. 촌각의 시간 안에 매미는 암컷을 찾아 힘껏 목청을 돋우고, 종족 번식의 본능에 충실하고는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매미가 태어나기 위해 유충으로 땅 속에서 살아가는 기간은 수년, 길게는 17년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세상 밖 열흘 남짓의 짧은 기간에 비하면 유충으로 살아가는 세월이 가혹하게 길어 찰나 같은 매미의 삶을 더듬어보면 애처롭기 그지없다. 종족 번식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열흘 남짓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생에 연민을 느끼기는커녕 잠을 좀 설쳤다고 잠시 원망을 던졌던 속 좁은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길게 보면 백년은 누릴 수 있는 내가 겨우 며칠 동안의 삶이 주어진 매미에게 소인배처럼 어울리지 않는 원망을 던졌으니 지청구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라 했던가. 어린 시절의 그 동심으로 편안히 즐겼다면 아름다운 소리였을 텐데 세상사에 찌든 지천명 범부가 애써 불쾌한 심정으로 귀를 맡기니 소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다가 스러지는 매미의 삶을 반추(反芻)해보면 이기(利己)만 넘쳐나고, 이타(利他)는 찾아보기 힘들고, 축복받은 긴 수명을 소중히 여기며 더불어 살아가는 노력에는 참으로 인색한 인간사는 여러 모로 초라하게 느껴진다.인간은 근본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긴 하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에서 이기는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를 벗어난 이기는 법적 잣대를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회질서를 좀먹는 사회적 병폐에 다름 아니다. 분명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무디어진 감각의 이기주의자들이 만연하고, 그래서 사회는 옳고 그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혼돈의 늪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겉도는 사회일수록 타의 지표가 되고, 삶의 향도가 되는 사회 지도층의 균형 잡힌 행동은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너무도 많은 사람들,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상식을 일탈한 이기주의는 많은 보통사람들을 깊은 허망함에 빠지게 한다. 고위 관료들의 위장전입은 인사 때마다 등장해 서민들의 부아를 치밀게 한다. 흔히 발생하는 거액의 뇌물수수 사건 등에 비하면 별것 아닐 수도 있으나 권력을 지닌 무자격자에게 기회를 뺏긴 가진 것 없는 유자격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바라보면 지나친 이기가 만들어낸 가진 자의 폭행이자 탄압이다. 욕심을 버리고, 순리를 좇으며 더불어 살아가면 좋을 텐데. 이 밤,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매미 소리가 죽비가 되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