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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3월의 함성 속으로] ④ 충남 전역서 울린 만세운동

2024. 03. 20 by 김지현 기자

3월 3일 윤칠영 등 5명 예산서 “독립만세” 
이후 부여 임천장터서 50~70명 만세
학생 200명 모여 만세운동 전개
“충남 만세운동 횃불 사용 특징 커”

충남은 충청권 최초의 3·1운동이 실시됐던 곳이다. 1919년 기미년(己未年) 3월 3일 윤칠영이 이끈 예산읍 금오산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3월 6일 부여 임천장터 만세운동, 3월 10일 학생독립만세운동 등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독립을 꿈꾸는 이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었다. 이후 논산, 아산, 대전 등 충청권 전역으로 3·1독립만세운동의 물결이 일면서 곳곳에서 횃불을 들었다. 충청권 3·1운동의 발상지로 기록되고 있는 충남에는 그날의 함성이 메아리치고 있다. 편집자

#1. 예산 동쪽산서 ‘대한국독립만세’

충청권 최초의 3·1만세운동은 105년 전 예산읍에서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 3·1운동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충남 최초의 3·1만세운동은 윤칠영을 비롯한 5인이 3월 3일 밤 11시 30분 옛 충남 예산군 예산면 예산리 동쪽산(금오산)에서 ‘대한국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스물여덟 살 이발사였던 윤칠영은 일을 마친 후 오후 8시 30분경 요리점에서 친구들과 모여 ‘일본 기타 경성 방면에서는 유학생 및 기타 학생이 단결해 성대히 한국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풍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기록돼 있다. 충남도장관 보고문서에도 이들은 예산헌병분대에 체포된 후 독립운동 관련 연계 조직이 없고 평소 온순하게 생업에 종사하며 불온 과격한 언동을 한 적이 없다는 등의 사유로 엄중 훈계를 받고 방면됐다고 나온다.

▲ 충남 부여군에서 3·1운동 부여의거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부여군 제공
▲ 충남 부여군에서 3·1운동 부여의거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부여군 제공

#2. 부여 임천장터 만세운동

‘조선은 이미 독립됐다. 서울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니 우리도 부르자. 조선독립만세.’
강한 독립 의지를 보이는 이 외침은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임천시장 일대에서 실시된 3·1운동 부여의거에서 울려퍼졌다. 그 시작은 서울에서 전개된 3·1만세운동부터다. 민족대표 33인 증 한 명인 손병희 선생이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됐다는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충청지역에 전했다. 독립선언서는 자유와 조국을 되찾기 위한 마음만큼이나 빠르고 간절하게 퍼졌다. 부여군 부여면 부여천도교구실에서 김태호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수령한 박성요 등은 3일 새벽 이를 부여군 내에 배포했고 6일 50~60명의 군중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여 임천헌병대를 향해 출발했다. 사료에 따르면 이들은 임천장터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연설을 한 후 임천시가지를 거쳐 보통학교, 면사무소, 임천헌병대로 나아갔다.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이들에게 헌병이 총칼을 겨누었지만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지난 11일 충남 당진 면천공립보통학교 3·10 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리고 있다. 당진시 제공
지난 11일 충남 당진 면천공립보통학교 3·10 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리고 있다. 당진시 제공

#3. 당진 학생만세운동, 횃불독립만세운동

이외에도 충남 전역에서는 다양한 계층·형태로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당진에서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면천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200여 명은 3월 10일 태극기를 높이 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면천경찰관주재소 일경들이 학생 2명을 체포했다.

충남 만세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횃불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3월 27일 충남 연기 동면 봉화 시위도 주민들이 마을 뒷산에서 불을 피우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김진호 (전)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이후 충남에서는 횃불독립만세운동의 형태로 진행됐다. 횃불독립만세운동은 야간에 산 등에서 횃불을 들고 전개한 것으로 충남이 가장 많이 실시했다는 특징이 있다”라며 “주권이 침탈된 후 3107일 만에 자주독립을 선언했다. 일제식민지배 상황에서 국가의 독립운동 일환으로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 그 자체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끝>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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