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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호반산책 with 오후햇살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21구간 해피로드]

2024. 05. 02 by 이기준 기자

봄볕이 유난히 따갑다. 대청호를 품은 산들은 벌써 초록으로 물들었다. 봄꽃의 향연과 연둣빛 신록의 계절은 스치듯 지나갔다. 새 생명이 돋아나는 대청호 생태계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많이도 짧아졌다. 아쉬움은 커져만 가고 그래서 자연의 소중함 역시 간절해진다. 위태로운 순간을 맞이한 대청호는 기후변화의 양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기후가 바뀌면 삶 또한 크게 바뀔 것이라고.

◆ 나무 그늘 아래

계절은 벌써 초여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통상적으로 봄은 3∼5월, 일평균기온이 영상의 기온 분포 속에서 20도 이하로 유지될 때를 의미하는데 낮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4월에도 더위를 느끼는 순간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5월엔 그 정도가 더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겨울은 짧아지고 여름은 더 길어지는 기후의 변화 속에서 체감상 봄 역시 짧아지고 있는 거다.

기온이 오르면 가장 절실해지는 건 ‘그늘’이다. 그늘이 있어야 지치지 않고 평온한 심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한여름에도 대청호 트레킹이 가능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대청호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숲이 주는 선물을 다 누릴 수 있다. 물론 봄·가을이 최상급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숲)의 공익적 가치는 2020년 기준 259조 원에 달한다. 국민 1인당 연간 499만 원의 혜택을 받는 셈이다. 온실가스 흡수·저장, 산림경관 제공, 산림휴양 기능, 토사유출 방지, 산림정수, 수원 함양, 산소 생산, 생물다양성 보전, 대기질 개선, 열섬현상 완화 등을 통해서다. 숲이 없다면 대청호도 온전히 존재할 수 없고 대청호오백리길도 죽은 길이 되고 만다. 대청호와 대청호를 둘러싼 숲은 그 자체로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힘이고 우리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나무 그늘 아래 대청호오백리길에서 ‘자연보호’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 비밀의 숲

대청호오백리길의 가장 큰 매력은 나지막한 산길과 평지길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데 있다. 평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빡세지도 않다. 백제의 미(美)를 가장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말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이 있는데 대청호오백리길 역시 그렇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10년 전 대청댐 보조여수로 준공과 함께 새로 지어진 미호교 인근 주차장에서 대청호오백리길 여정을 시작한다. 대청호오백리길의 첫 구간(1구간)과 마지막 구간(21구간)의 일부로 코스를 짰다. 대청호의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는 원점회귀 약 11㎞ 코스다. 주차장에서 로하스가족캠핑장, 지명산, 이촌마을, 강촌마을, 금강로하스 해피로드로 이어진다. 대청호오백리길은 체력 안배를 고려해 자유롭게 코스를 짤 수 있고 어떤 선택을 하든 절경을 감상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매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어디서 출발하든 늘 설렘으로 시작해 기대감으로 마무리된다. 늘 그곳에 있지만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신비롭다.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은 대청호 건너 청남대를 바라보며 길이 이어진다. 청남대에 마련된 전망대들과 초가정을 비롯한 시설들을 볼 수 있다. 1구간은 곳곳이 다 명소인데 캠핑장 주변 ‘비밀의 숲’이 특히 인상적이다. 하늘빛 광활한 대청호와 잘 정비된 목책, 아름드리 나무 그늘 아래 산책로가 어우러져 보는 것만으로 힐링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엔 2020년 여름,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비밀의 숲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곳곳에 배치된 벤치는 잘 활용하면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된다. 가을에 운치를 더할 은행나무 행렬도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잘 찾아보면 두 나무가 만나 하나가 된 연리지목도 발견할 수 있다.

◆ 다른 매력의 두 亭子

비밀의 숲에서 나와 산길을 오른다. 158m의 야트막한 산, 지명산이다. 지락산이라고도 한다. 가파른 오르막 구간은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돼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산행을 할 수 있다. 곳곳에서 대청호 조망이 터져 눈이 즐거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 정상엔 ‘지락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정자에 앉아 평온하게 펼쳐진 대청호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시원한 바람에 실려 마음 속 시름과 함께 흩어진다. 잠깐 힘들 순 있지만 기어이 산에 오르는 건 바로 이 맛 때문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 많은, 더 새로운 절경들을 만날 수 있으니 한 번 맛보면 거부할 수가 없다.

천천히 내리막을 타고 내려오면 또 하나의 정자를 만나게 된다. ‘대청정’이라는 이름의 정자인데 이 정자를 모르고 지나칠까 다람쥐 한 마리가 마중 나와 길을 안내한다. 지락정과 달리 이곳은 수변 가까이 있어 대청호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준다. 소나무숲에 감싸안긴 이 정자에 앉아 한없이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상낙원,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따사로운 햇살이 소나무숲을 파고들어 눈가를 간지럽힌다.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금빛 윤슬이 일렁인다. 이만하면 오후의 산책으론 호사다. 평온한 힐링에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 이촌·강촌 차 한 잔의 여유

대청정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지명산을 한 바퀴 삥 돌아 다시 로하스캠핑장이다. 삼정마을 방면으로 다시 길을 잡는다. 보조댐 위를 지나 대청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다보면 이촌마을에 접어든다. 삼정마을엔 두 개의 생태공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이촌마을에 있다. 아기자기하게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주변에 카페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이 마을은 예부터 이 씨들이 모여 살고 있어 이촌마을로 불린다. 이곳은 평일에도 점심시간 전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산책을 즐기기로 유명하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요즘은 대덕특구 기업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이상 넉넉한 점심시간을 줘 동료들끼리 화합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직장도 늘고 있어 대청호에 대한 접근성이 더욱 용이해졌다.

이촌마을을 뒤로 하고 다시 수변 길을 걷다보면 금세 또 다른 생태공원과 마주한다. 이번엔 강 씨 집성촌인 강촌마을이다. 이곳 역시 카페에 앉아 커피를 음미하며 안구정화를 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삼정마을을 빠져나와 원점으로 회귀하는 구간은 도로와 접해 있는 포장길이다. 삼정동삼거리까지 걸어나와 대청댐 방면으로 향하는 길은 금강로하스 해피로드다. 삼정동삼거리에서 미호교 인근 주차장까진 약 1.5㎞. 햇볕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 조금씩 붉게 물들고 대청호도 천천히 하루를 정리할 채비를 한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차철호·김동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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