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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건네자 민원인은 누웠다

[밀착취재 :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의 시간]

2024. 05. 13 by 김지현 기자

복지팀 민원 하루 평균 30~40건
동문서답 민원인 대화시간만 30분
하소연하는 민원인엔 상담사 역할
‘감사하다’ 말 한마디가 버티는 힘
악성민원 늘자 가림막은 더 커졌다

“‘너 때문에 죽겠다.’ 전화로 이런 말도 하세요. 그런 날은 퇴근 후에도 걱정되고 불안하죠.”

최근 악성 민원인으로 인한 공무원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다. 민원인과 대면하는 이들을 향한 협박성 짙은 폭언과 막무가내식 악성 민원 때문이다. 일선 행정복지센터는 날마다 이러한 민원과의 전쟁을 치른다. 동문서답을 하고, 연거푸 하소연만 늘어놓는 민원인에 답답할 법도 하지만 공무원은 마음을 다독이고, 귀 기울여 해결책을 찾는다. 자신들의 몫이라고는 하지만 지쳐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책상 위 커다란 아크릴 가림막 한켠에 쓰인 ‘공무원의 인권을 존중합시다’라는 말에서 우리 사회의 무례한 모습이 비쳤다.

◆ 속이 풀릴 때까지

“무슨 일로 오셨어요?”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들어봤을 말이다.지난 7일 오전 10시 10분경 대전 동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한 고령의 민원인에게 공무원이 물었다. 백발의 노인이 소파에 앉자마자 하소연을 쏟아냈고, 겉옷을 들추며 허리보호대를 보여줬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기자는 당황했지만 공무원들은 익숙한 듯 노인에게 다가가 침착하게 질문을 던지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고령의 민원인이 방문한 이유는 허리 수술로 생계가 더 막막해져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 지난 7일 대전 동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에서 한 공무원이 소파에 앉아있는 민원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지난 7일 대전 동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에서 한 공무원이 소파에 앉아있는 민원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문제는 노인의 자녀들이 일하고 있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서 배제된 이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눈물을 훔치는 노인에게 담당 공무원은 물 한 컵과 휴지를 건넸다.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힘들고 아프다는 말을 반복하며 20분 가량 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참을 귀 기울이던 담당 공무원은 “어르신 (몸이 불편하시니까) 직접 오지 마시고, 앞으로는 전화 먼저 주세요. 그럼 댁으로 찾아뵐게요”라며 다독였다. 이후 들려오는 노인의 대답은 “택시 좀 불러줘”였다. 2명의 공무원이 노인을 부축해 택시를 태우고 나서야 상황이 일단락됐다.

이날 동행 취재를 한 중앙동행정복지센터 인근에는 여인숙과 쪽방이 밀집돼 있어 노인·장애인 복지 관련 민원이 하루 평균 30~40건에 달한다. 다수의 민원인이 방문한다는 건 그만큼 악성 민원도 적잖다는 소리다. 공무원 A 씨는 “주변 여인숙·쪽방 거주자나 출소 후 긴급생계비를 신청하러 오는 분들이 많은데 간혹 술을 마시고 방문하는 민원인이 있다. 전화를 통해서도 성적인 발언을 하거나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 심한 경우에는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다”라며 “다른 동에 비해 힘든 민원은 많지만 우리 업무가 사회복지니까 알고 있는 정보와 제도를 최대한 알려주고, 신청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간혹 일이 잘 해결됐을 때 ‘고맙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다. 그 말 한마디를 위안삼아 버틴다”고 덤덤히 말했다.

한 공무원이 장애인 기초생활수급 신청서를 작성하는 민원인을 도와주고 있다.
한 공무원이 장애인 기초생활수급 신청서를 작성하는 민원인을 도와주고 있다.

◆ 이해할 때까지

“65세 미만이시면 일을 하셔야 수급비를 받을 수 있어요. 장애인 자활사업장 안내해드릴게요.” 다른 창구에서는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을 두고 한참 씨름 중이었다. 민원인은 듣는 둥 마는 둥 딴소리를 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연신 이력을 조회하며 방안 찾기에 골몰했다.

안타깝게도 해당 민원인은 복지상담 이력조차 전무했다. 결국 담당 공무원은 장애인 기초생활수급 신청서를 펼쳤다. “이것도 쓰는 거예요?” 기초생활수급 신청서를 작성하던 중년의 남성 민원인은 이해를 못 한 듯했고, 담당 공무원과 복지담당자가 그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순조롭게 해결되는 것 같았지만 신청을 위해서는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가 더 필요했다.

“바쁘게 해서 미안해요.” 민원인의 말에 담당 공무원은 “괜찮아요, 선생님. 모르시면 전화주세요”라며 서류봉투에 명함도 함께 넣었다. 홀로 거주하는 이들이 많아 간단한 민원이나 정보 안내도 허투루 넘길 수 없어서다.

공무원 B 씨는 “연휴가 끝날 무렵이나 월요일에는 장애인·사회복지 쪽은 신규 기초생활수급 신청자로 민원이 많다. 복지·생계 상담은 세부적으로 민원인의 말을 들어봐야 하고, 처음 오신 경우에는 관련 내용을 설명해야 해 기본적으로 30분은 걸린다”며 “힘든 부분을 호소하는 것이니 들어주고, 방법을 찾아주려고 한다. 종종 서류를 누락해서 가져오는 민원인이 있어 헛걸음 하지 않도록 명함도 준다”고 말했다.

“설명을 듣지도 않고, 대화가 안 돼 힘들 것 같다.” 기자가 한 마디 거들자 그는 “술 취해 방문한 후 다짜고짜 화를 내는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악성 민원인을 만난 날에는 점심시간에 인근을 산책하며 스트레스를 푼다”며 웃어보였다.

◆ 깎아줄 때까지

그렇다고 장애인·복지 업무 외 행정업무를 도맡고 있는 공무원이 일하기 편한 것은 절대 아니다. 서류를 주고 받으면 해결되는 분야이지만 이해되지 않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식 민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인감대장을 정리하던 공무원 C 씨는 “인감증명서 위임장을 양식에 맞춰 작성해오는 분들이 적다. 다시 써줄 것을 권하면 막무가내로 그냥 처리해달라고 하기도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직사회에 입문한 지 이제 막 3개월이 된 새내기 공무원 D 씨도 이에 공감한다. D 씨는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종종 대형폐기물 스티커 가격을 깎아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는 난감하다”고 말했다.

바로 옆 빈자리는 철거가 예정된 현장이나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곳을 직접 발로 뛰며 예찰하는 이들의 자리였다.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민원인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업무 처리를 하고 있는 공무원의 책상 앞 투명 아크릴 가림막에 ‘공무원의 인권을 존중합시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다.
업무 처리를 하고 있는 공무원의 책상 앞 투명 아크릴 가림막에 ‘공무원의 인권을 존중합시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다.

◆ 안전해질 때까지

코로나19 이후로 우리사회의 벽은 더 두꺼워졌다.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보이는 거리도 뚜렷해진 것. 코로나19 당시 감염 예방을 위해 설치된 투명 아크릴 가림막은 악성 민원인으로 인한 피해가 나오면서 공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용도를 변경해 사용되고 있다.

중앙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투명 아크릴 가림막도 올 초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교체됐다. 그러나 민원인의 바로 옆에서 응대하는 상황이 다반사인 탓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박세범 행정팀장은 “지나친 폭언·폭행을 하는 민원인이 있을 때는 ‘하지말라’고 강하게 말하며 중재하거나 경찰이 올 때까지 진정시킨다. 아크릴 가림막도 악성 민원인으로 인해 올해 교체한 것”이라며 “행정복지센터 내부에서는 민원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행정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 외부 현장에서는 발로 뛰며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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