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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 벽, 우리사회의 씁쓸한 자화상

2024. 05. 15 by 김지현 기자

민원창구·버스운전석 등 가림막
코로나19 이후 더 크고 두꺼워져
공무원 등 향한 폭언·폭행이 원인
마음의 거리, 단절된 사회 만들어

<속보>=‘아크릴 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 사회가 단절됐다. 투명한 아크릴 벽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폭언과 배려없는 말들로 인해서다. 코로나19 당시 감염 예방을 위해 행정복지센터, 시중은행 등을 중심으로 설치됐던 투명 아크릴 가림막은 최근 악성 민원인·고객으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간격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본보 5월 14일 자 1면 등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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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한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아크릴 가림막에 ‘공무원의 인권을 존중합시다’라는 문구의 스티커가 붙여져있다. 김지현 기자
▲ 대전의 한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아크릴 가림막에 ‘공무원의 인권을 존중합시다’라는 문구의 스티커가 붙여져있다. 김지현 기자

우리 사회는 지난 2019년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감염 사태를 직면했다. 예기치 못한 재난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등장한 방안은 감염 경로 차단을 위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였다. 학교는 문을 닫은 채 비대면 수업을 이어갔고 각종 민원 서비스는 얼굴을 보지 않고 처리됐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감염 위험성은 낮아졌지만 우리 사회는 더욱 단절되고 고립됐다.

이후 얼마지 않아 중단됐던 대면수업이 재개되면서 투명 아크릴 가림막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얇고 가벼운 아크릴 가림막은 교육 현장을 비롯해 관공서와 병원, 은행 등에도 속속 들어섰다. 그러나 투명 아크릴 가림막의 등장으로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음에도 멀어진 마음의 거리는 계속됐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19 경보단계는 경계에서 관심으로 격하돼 감염병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건만 우리 사회의 벽은 여전히 견고했다. 대표적인 게 공무원을 향한 악성 민원이다. 폭언·폭행을 하는 악성 민원인으로 인해 공무원들이 숨지면서 일선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됐던 아크릴 가림막은 더욱 크고 견고해져 민원인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대전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A 씨는 “폭력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대응 매뉴얼이 있어도 경찰이 오기 전까지는 진정시키는 정도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라고 속을 털어놨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서울시 동대문구청 종합민원실을 방문, 민원 처리 현황 및 민원공무원 안전가림막 설치 등 보호 조치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서울시 동대문구청 종합민원실을 방문, 민원 처리 현황 및 민원공무원 안전가림막 설치 등 보호 조치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사실 우리 사회 속 벽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시내버스 운전자 보호격벽이 대표적이다. 운전자 보호격벽은 2006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일부 승객들로부터 버스 기사가 폭행당하는 사고를 막고자 의무적으로 도입됐다.

대전의 한 시내버스 기사는 “늦은 밤 운행할 때 술을 마신 승객이 많이 탑승하는데 종종 시비를 걸고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욕은 기본이고 핸들을 붙잡고 돌리려 하는 등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 행위를 한 경우도 있다. 승객들이 이런 행동을 하면 우리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거나 차를 정차하고 경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라며 “격벽을 설치한 후 확실히 승객들도 조심하는 게 있고, 폭행이 줄어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모순적이게도 아크릴 가림막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거리를 안정감으로 채웠다. 전국공무원노조 세종충남지역본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당시 관공서는 초비상이었다. 여러가지 보호방안 중 한가지로 민원실에 아크릴 가림막을 설치했다. 설치하고 나니 민원인이 책상을 넘어 폭력을 가하는 게 줄었다. 대중교통에 가벽을 설치했던 것과 비슷하다. 근본적인 공무원 보호대책은 아니었지만 민원인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대책은 됐다”라며 씁쓸해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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