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에서 귀신을 다룬다고 하니 처음엔 다들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취재를 위해 주변에 오싹한 경험이나 신기했던 ‘썰’을 풀어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반응은 제법 진지했다. 다들 귀신이 어딨겠냐라던 반응은 아니다. TV에서 소개됐던 연예인의 귀신 목격담까진 아니었지만 쉽게 머리론 이해가지 않았던 사례를 소개했다.
◆가위 눌린 게 아니었다
A 씨가 대전의 한 지방지에서 일했을 때였다. 당시 오전 근무가 아니라 오후 근무를 하는 부서였기에 그는 남들이 출근할 땐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부터인가 특정 장소에서 잠이 들 때마다 꿈인지 생시인지 정말 분간이 안갈 정도의 가위에 눌렸단다. 시간이 흘러 특정 장소가 아니라 집 안 다른 장소에서 잠들 때도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신문사에서 일했기에 비과학적인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싶지 않아 기독교인인 지인에게 방법을 물었더니 보혈(寶血)찬송을 불러보라는 답변을 들었다. 보혈찬송은 예수인 그리스도의 보혈, 즉 십자가에서 흘린 귀한 피를 찬양하는 찬송가다. 예수의 귀한 피가 죄를 씻고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지며 따라서 보혈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그 피의 대속적 의미를 기리고 높이는 신앙적 노래인 동시에 신성한 노래다. 그리고 분명 효과는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가위가 풀리는 효과는 아니었다. 가위에 눌릴 때, 그가 보혈찬송을 힘차게 부를 때 정체 모를 무언가가 그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A 씨는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고양이의 복수
인터넷신문 대전본부 소속 기자의 이야기다. B 씨가 군대에 있었을 무렵인 약 20년 전 일인데 그는 아직도 당시의 상황을 절대로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B 씨는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했다. 흔히 짬타이거라 불리는 제법 큰 길고양이가 부대 잔반을 먹기 위해 지내던 곳이다. 그러나 한 동기가 ‘고양이는 하찮은 영물’이라는 이유로 싫어했고 밤마다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하루는 근무를 나가던 중 돌을 던졌다. 그리고 돌을 맞은 고양이는 죽었다. B 씨는 “생명이 꺼졌으니 양심이 있다면 묻어주라”라고 했지만 그 동기는 끝끝내 무시했단다. 그날부터였다.
짬타이거가 죽은 위치에 밤마다 수많은 고양이 안광이 나타났다. 고양이를 추모하듯 매일 밤 울었고 B 씨의 동기를 향한 B 씨와 후임의 질타는 거세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동기의 고집 역시 대단했다. 그러다 B 씨와 동기가 근무를 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B 씨의 동기는 연병장까지 와서 갑자기 화장실 좀 들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3분, 5분이 지나도 동기가 안오길래 B 씨는 그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B 씨의 동기가 화장실 앞에 기절해 있었다. 의무대에 동기를 눕히고 그 동기는 아침이 돼서야 일어났다. B 씨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화장실을 나오고 탄띠를 두르는데 내 눈높이에서 고양이 안광 수십개가 날 보고 있었어. 그 안광이 수십초 이상 눈 한 번 안깜빡였어.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고양이 울음소리는 없고 그저 안광이 계속 날 바라봤던 거야.”
B 씨는 바로 동기에게 고양이가 죽은 곳에 술이랑 음식을 뿌리고 사죄하라 했고 동기는 이를 바로 따랐다. 그리고 밤마다 안광을 내뿜으며 울어댔던 수많은 고양이도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아파트의 아이
C 군은 어릴 때부터 귀신을 자주 봤다고 했다. 집 안에서 모르는 노인이 신문을 읽고 있거나, 밤길에 낯선 여자가 자신을 따라오다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고등학교 시절 밤 늦게 집에 돌아온 그는 또 다른 광경을 목격했다. 아파트 13층 계단 창가에 앞집 여자가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여인은 멍한 눈빛으로 창밖만 응시했다. 그런데 아래층에서 갑자기 어린아이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7~8세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달려 올라왔다. 그 아이는 아무 망설임 없이 여자의 다리를 끌어당겼고 여자는 그대로 창밖으로 떨어졌다. C 군이 창문을 내다봤을 땐 밑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며칠 뒤 놀이터에서 다시 만난 그 아이는 그네에 앉아 있었다. 시선을 따라 올려다본 아파트 꼭대기 층 창문 밖으로 앞집 여자가 실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순간 아이가 고개를 360도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너도 봤으니, 다음은 네 차례야.”
C 군은 그 말과 동시에 기절했고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입 밖에 내는 것을 꺼린다.
◆복층 원룸의 속삭임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한 D 씨는 특이한 구조의 복층 원룸에서 살았다. 햇빛이 잘 들지 않고 어둡고 습한 집이었지만 2층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 구조가 마음에 들어 계약한 집이었다.
몇 달 후 어느 날 새벽 2시, 잠결에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어나, 일어나야지.”
꿈이라고 하기엔 숨소리까지 너무 생생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며칠을 지냈지만 같은 일이 또 반복됐다. 다시 새벽, 또다시 같은 속삭임. D 씨는 소름이 돋아 눈을 떴다.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위독하시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이후 속삭임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D 씨는 지금도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마지막 순간, 할머니가 정말로 손주를 깨우러 온 건 아니었을까.
◆허름한 집, 그곳의 그림자
도시 외곽의 오래된 연립 주택. 가난했던 한 가족은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았다. 낮에는 그저 낡은 건물에 불과했지만 밤이 되면 이상한 일들이 이어졌다. 주말마다 교통사고가 나고 집 안에서는 정체 모를 발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을 괴롭힌 건 밤마다 반복된 가위눌림이었다. 숨이 막히고 몸 위에 무언가가 올라앉은 듯 눌려 꼼짝할 수 없던 순간. 어느 날은 눈앞에서 소복을 입은 여인이 미끄러지듯 방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똑똑히 봤다.
이후 이사를 나가면서 알게 됐다. 새로 세입자가 된 이는 무당이었다. 그는 “이 집엔 원혼이 많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병들거나 죽었을 것이다. 가족이 무사한 건 어머니 기가 셌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결국 연립은 허물어졌고 그 자리는 대형마트로 변했지만 가족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남아 있다.
괴담은 허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전해지는 괴담은 결국 같은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주빈 기자·정근우 수습기자 gnu@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