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은 존재하는가

‘월간 이이김김(李李金金)’이 돌아왔다. 이 이름을 처음 붙였을 때는 단순했다. 이(李) 씨 둘, 김(金) 씨 둘이 모였으니 그렇게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세월이 흐르며 구성은 조금 달라졌지만 이름만큼은 남기기로 했다. 함께 고민하고 써 내려가던 시절의 기억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복귀작을 준비하면서는 주제부터 욕심이 났다. 조금 있어 보이는 걸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학술적인 것, 문화적인 것, 멋을 부릴 만한 주제들 사이를 오갔다. 그런데 막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단어는 따로 있었다. 의외로 ‘귀신’이었다.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회의를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그쪽으로 기울었다. 누군가는 집에서 겪은 이상한 경험을 털어놨고 또 다른 이는 어릴 적 들은 괴담을 꺼냈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생각해보면 이번 호를 귀신으로 연다는 건 꽤 무모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존재조차 불확실한 대상을 다루는 일은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끌리는 주제도 없었다. 과학은 부정하고 종교는 외면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귀신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샌다. 그 사실 하나면 시작하기에 충분했다.
과학이 부정하고 종교가 외면해도
그림자 속 믿음의 경계서 스멀스멀
설명하기 힘든 ‘귀신’ 이라는 관념
내면 속 두려움 사라지지 않는 한
불편한 동거는 계속해서 이어질 듯
◆과학의 빛이 닿지 않는 자리
밤은 언제나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정적은 남아 있고 그 적막 속에서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의 시선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낡은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단순한 바람일 뿐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 순간 스스로를 속이며 그림자를 사람으로 바꾸고 어둠에 존재를 부여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의 내면에서는 알 수 없는 긴장이 깨어난다. 세상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왔다. 인간은 하늘을 찢고 우주로 나아갔으며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을 탐사했다. 냉전의 시대는 과학의 전성기를 열었고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다. 그에 비해 인간이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은 많다. 얼음이 왜 미끄러운지, 번개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물이 지구에 어떻게 생겨났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 과학은 세상을 비추는 거대한 빛처럼 작용했으나 빛이 닿지 못한 곳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남는다. 귀신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 그림자 속에서 살아남아 있다.
◆믿음의 경계에서 태어난 존재
학자들은 귀신을 환각으로 정의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이 뇌의 착각을 불러오고 저주파 소음이 환영을 만들어내며 전자기파가 시각을 교란해 존재하지 않는 형체를 보게 만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감각이 있다.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냉기, 몸이 반응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알아채는 낯선 기운 같은 체험은 논리로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은 이유를 모를 때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귀신이라는 관념은 그렇게 태어났다. 종교 또한 이 문제 앞에서 오래 머뭇거려왔다. 천주교는 귀신 대신 악령을 말하고 개신교는 죽은 자의 영혼과 교류하는 행위를 부정한다. 다만 두 전통 모두 영혼의 존재 자체는 인정한다. 육체가 사라져도 남는 무언가가 있으며 신과 교감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고 본다. 이 모순은 신앙의 깊은 뿌리에 자리 잡은 역설이다. 종교는 귀신을 부정하지만 영혼은 인정한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 두 개념이 충돌할 때 믿음과 두려움이 같은 자리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그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귀신이라 부른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실체
과학이 부정하고 종교가 외면한 자리를 채운 것은 언제나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경험을 전했고, 경험은 전설로 바뀌었으며, 전설은 증언의 형태로 되살아났다. 이상한 존재의 실체를 확인했던 순간, 인간의 눈높이에서 수초 동안 자신을 보려보던 이야기 등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사례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 반복됐다. 내용은 달라도 구조는 늘 비슷했다. 그때 분명히 무언가 있었다는 것이다. 형체는 불분명하지만 감각은 또렷했고, 믿기 어려웠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았다. 귀신의 실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봤다’는 확신이었다. 한 사람의 기억이 다른 사람의 상상으로 옮겨붙을 때 공포는 실체처럼 굳어졌다. 이야기는 사람을 거치며 형태를 바꿨고 그럴수록 더 사실처럼 다가왔다. 결국 귀신은 실존의 문제가 아니라 확산의 문제로 남았다. 두려움이 사람 사이를 흘러가며 형체를 얻고 그렇게 하나의 존재로 변해갔다. 인간은 이유를 찾으려 했다. 왜 그런 체험을 했는지, 왜 그런 모습을 보았는지, 왜 그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 알고 싶어 했다.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종교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인간은 어느 쪽에도 머물지 못했다. 믿어서가 아니라 두려워해서다. 귀신은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서 태어난 가장 오래된 그림자였다. 어쩌면 귀신은 실재하지 않을지 몰라도 두려움은 분명히 존재했다.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귀신이라는 이름은 인간의 세계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이제 오래된 두려움과 가장 냉철한 이성이 만나는 지점을 살펴볼 차례다. 과학은 귀신을 어떻게 부정했고, 인간은 그 부정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셋의 불편한 동거를 함께 따라가 보자.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