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성지원에서 벌어진 인권침해가 국가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5년에 걸친 조사를 종합해 보고서를 내고 성지원을 구조적 인권침해 사례로 명시한 것은 수십 년 외쳐도 들리지 않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공적 기록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실이 문장으로 남는 것만으로는 역사가 정리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그 진실을 다루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태도가 역사를 만든다. 성지원 문제는 이미 한 차례 기자수첩으로 다룬 바 있다. 당시엔 피해자 증언과 기록의 공백, 지방정부의 책임 회피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가 과거사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피해자 개인의 구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 사회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방식이다. 잘못을 기록하고, 잘못을 사과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단죄를 넘어 미래를 담보하고 기약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2003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던 장면은 그 의미를 보여준다. 국가 최고 권력이 처음으로 공권력이 국민에게 가한 폭력을 인정했던 순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정치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나 말은 언제나 그 다음을 요구받는다. 말이 방향이 되고, 구조가 되고, 책임이 될 때 비로소 정치의 언어는 생존한다. 그렇지 못한 말은 수사가 되고 반복은 결국 지역의 신뢰를 소모하기 마련이다. 지금 충청이 마주한 풍경은 말의 부재가 아니다. 말 이후의 부재다.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놓고 충청의 반발이 거세다. 해수부 이전은 부처 하나의 이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종시를 중심으로 쌓아올린 행정수도 구상의 축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 제2집무실, 국회 세종의사당, 공공기관 2차 이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의 이름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건 지난해 8월 윤석열정부가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하기 전후였다. 그리고 논란은 거의 예고된 듯 뒤따랐다. “8·15는 광복절이 아니다”라는 과거 발언, 친일 인물 재조명 시도, 독립운동가 후손과 보훈단체의 공개 반발까지 임명 직후부터 수장으로서의 적합성을 묻는 질문은 피할 수 없었다.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의 기억을 보존하고 기념하는 공간이다. 그곳은 역사의 무게가 내려앉은 자리이며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호 중 하나다. 그런 공간의 수장을 누구로 삼을지
주말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호 대기 중인 한 택배차량에 시선을 뺏겼다. 때가 낀 하얀 택배차량 후미에 노란색 글자 스티커가 붙어있었는데 내용이 무척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기사 위급 시 택배부터 배송’? 웃고 넘기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붙여놓은 ‘아이 먼저 구해주세요’도 아니고, 택배부터 배송해달라니. 생명보다 소중한 물건이 있다던가. 혹여 ‘택배공화국’이 된 현실을 비판하고 싶은 건 아닐까 하는 호기심도 뒤따랐다.얼마 안 가 바뀐 신호 탓에
비상계엄과 탄핵, 그리고 개헌. 이 세 단어가 우리 앞에 던져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1979년 이후 45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계엄령 이후 내려진 포고령에는 정치활동 제한, 집회 금지, 언론 검열 등의 내용이 담겼다. 모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정지시키는 조치다. 특히 계엄군의 국회 진입 시도는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였다.1948년 제헌헌법으로 시작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1960년 4·19혁명은 부정선거에 맞선 최초의 시민 혁명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5·16
중국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 두영(竇嬰)은 태후의 조카이자 대장군 지위에 있는 실력자로 각지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조정 대신들이 그의 앞에서 굽신거렸다. 하지만 무제가 황제에 오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두영의 집에 들락거리며 아첨을 일삼았던 전분(田粉)이 누이의 황후 책봉으로 벼락출세하게 됐고 그 권세는 오히려 두영을 능가하게 됐다. 두영 앞을 얼씬거리던 고관대작들이 이번엔 전분에게 달라붙어 갖은 아첨을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잔치가 벌어졌고 두영과 전분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고, 둘 사이에 다툼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늘 그런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역사에서 행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이룩한 성취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역사만큼 훌륭한 교사는 없다.돌이켜보면 1950년 한국전쟁은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이었다. 한국전쟁이 휴전에 접어든 지도 7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는 장면 하나가 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대통령의 행보다. 6월 27일 대전으로 피란한 이승만 대통령은 임시 대통령 관사가 된 충남도지사 관사에서 자신은 피란
반도체와 자동차만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다. 먹고, 놀고, 자는 것에서도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관광산업이 가진 매력이다.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이 없어도 경제적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관광을 ‘보이지 않는 무역’이라고 일컫고, 관광산업을 ‘굴뚝 없는 공장’이라고 일컫는 이유다.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기준으로 세계 관광산업 규모는 전 세계 GDP의 10.5%인 9조 2000억 달러(약 1경 2000조원)에 이른다. 국경을 넘는 여행객이 1년에 14억 6000만 명에 달하고, 관광산업과 관련된 일자
살면서 대통령을 다룬 영화를 영화관까지 쫓아가 관람한 적은 없다.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미화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어서다. 그럼에도 ‘건국전쟁’을 영화관에서 본 건 대한민국 역사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공과(功過)는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100분의 러닝타임은 한숨의 연속이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실은 그들이 믿고 싶어하는 사실에 지나지 않았다. 명색이 다큐멘터리임에도 공과를 사실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가치중립적인 사실과 거리를 멀찍이 둔 이 영화는 이승만 복권을 위한 홍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솔직한 감상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중략) 이제 밝아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시인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이 있음을 노래했다.'(증략)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꽃을 피운다는 건 꽃샘바람 뺨을 치고 황사 눈앞을 가리고 그 위에 흙비 쏟아져도 멈추지 않는 일이다. 멈추지 않고 자신의 전부를 밀어 올리는 일이다/ 밀어 올리는 흔적 하나하나가 모여 눈물겹고 아름다운 얼굴로 바꾸는 일이다. 대지에 눈 감고 있는 것들 하나씩 눈뜨게 하고 그래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왔어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일이다. 개나리꽃이 그러하다.’ 도종환 시인의 시 ‘꽃 피우기’다.고향이 어디세요? 어느 고등학교 나왔나요? 어디 성씨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던지는 통상적인 질문들로, 이중 하나라도 공통점이 있으
“정치를 치정으로, 정부를 부정으로. (중략) 거꾸로 읽다보면 하루를 물구나무섰다는 생각이 든다. 내 속에 나도 모를 비명이 있는 거다. (중략) 거꾸로 읽을 때마다 나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나도 문득 어느 시인처럼 자유롭게 궤도를 이탈하고 싶었다.”시인은 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때 무슨 말이든 거꾸로 읽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거꾸로 된 세상을 거꾸로 보면 직성이 풀려야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게 작금이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질 않아 포기했을 때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는 역설적 아픔이 느껴진다.“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 첫 구절이다.조지훈 시인은 ‘낙화’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중략)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한마디로 ‘웃픈’ 스산한 계절이다. 공주시 문화예술계에 처한 현실이 그렇다. 이준원 공주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가 자진 사퇴를 결심했다. 올 12월까지 근무한 뒤 물러난다. 잔여 임기를 8개월 남겨 놓고 물러나는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성이 살아서 걸어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 부디 전하께선 이 치욕을 견뎌주소서.”“한나라의 국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하시옵니까. 저는 차마 그런 임금은 받들지도, 지켜볼 수도 없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신의 목을 베소서.”지난 2017년 10월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의 명대사다.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과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분)은 각자
‘가슴을 노래하는 시인의 입술에서 고약한 언어가 일상이라면 가면 쓴 글쟁이겠지. 깊은 생각을 찾는 철학자의 걸음에서 천박한 발자국이 남겨진다면 가면 쓴 생각쟁이겠지. 우리가 서는 어느 무대에서라도 뭇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도록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겠지.’ 시인 허대중의 시 ‘가면 인생’이다.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而後從之.”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말한 것을 먼저 실행하고, 그 다음에 말하는 것이다.” ‘논어’ 위정편 13장에 나오는 말로, 어떻게 하면 군자가 될 수 있냐는 자공의 물음
20세기는 침략과 전쟁, 그리고 지배와 억압의 시대였다. 특히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동아시아의 근본적인 화해는 일본의 솔직한 역사 인식, 과거사 반성, 사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최근 마무리된 한·일 정상회담을 보며 뼈저리게 느낀 소회다.한·일 정상이 마주했지만 기대보단 개탄스러운 재회였다. 지소미아(GSOMIA) 정상화, 셔틀외교 복원,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 해제 등 경제·안보 분야의 관계 회복 신호는 분명했다. 하지만 한·일 정상회담의 초점이었던 강제징용과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눈 닿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한쪽 길을 택했습니다. (중략) 어디에선가 먼 훗날 한숨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일부다.‘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모 가전회사의 유명 광고 카피다. 당시 인기절정의 광
“현명한 사람을 등용했는데도 위태로움과 멸망에 이르는 것은 어째서인가?” 주(周) 무왕(武王)의 물음에 태공(太公)은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면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이것은 현명한 사람을 등용했다는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진실로 현명한 사람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무왕이 “그 잘못은 어디에 있소?”라고 재차 묻자 태공은 “그 잘못은 군주가 작은 선행이 있는 사람을 쓰기 좋아할 뿐, 진실로 현명한 사람을 얻지 못한 데에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전한(前漢)말 유향(劉向)이 편찬한 설원(說苑)에 기록된 교훈이다.춘추(春
중장년층에게 ‘사이다’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오는 추억의 한 페이지다.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마음 설레던 소풍날 김밥에 사이다 한 병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달달하면서도 톡 쏘는 그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답답한 속이 뻥 뚫릴 때 ‘사이다’라고 표현한다.최원철 공주시장의 10일간 여정이 그랬다. 지난달 25일 이인면을 시작으로 지난 5일 유구읍에서 마무리된 초도순방은 한마디로 ‘화통행보’였다.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과 사이다 발언으로 코로나19에 지치고 찜통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청량감을 안겼다.최 시장의 화법은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