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이 그리울 때 있었다둘러보아도 어디 빈 곳 없는만조의 물이랑 앞에서이렇게 가득한 게 생일까묻던 때가 있었다하늘과 바다반반으로 닿아서로를 여는 수평선 앞에서나는 자주 파도에 젖곤 하였다그 후, 가끔썰물이 그리울 때 있었다너와 나의 욕심한순간 거두어 보내고 싶던 때하루 한 번씩비우고 채우는 바다처럼나 깊어지고 싶을 때가 있었다서해 갯벌의 발자국마다간조 위에서 만조를만조 위에서 간조를그리워하던 내가 숨쉬고 있다그대 삶의 순간을 사랑하면 저 서해 갯벌로 가라. 때때로 우리 삶이 막막해져 오는 빈 바닥으로 그득히 차오르는 물의 마음 읽을
네가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세상의 그리움이 너에게서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이 세상의 젖은 풀잎 하나네 등 뒤에 얼굴을 묻기 때문이다네가 외로워하면이 세상이 다 외로운 것이다지상에 꺼지지 않는마지막 등불 하나도바람 앞에 몸을 내줄 것이다너를 잃어버리고세상의 손길에 모든 것을기대어 설 때도하늘의 별 하나는 깨어 있다너를 모두 잃고세상이 되돌려주기 기다리며깊은 잠을 설칠 때들녘에 집 잃고 헤매는반딧불 하나 쉬지 않고 길 간다세상의 반은 세찬 파도지만또 나머지 반은 섬이다사랑을 잃고, 길이 보이지 않아몇 밤을 지새운 뒤에야진정 이 세상을
그림자 따라 걷다가빈집 앞을 지난다제 그림자 볼 수 없어 매미는땡볕 속에 소리를 쏟아낸다소리에는 그림자가 없다마당엔 풀들이 가득 에워싸고집에는 그림자 풍년이 들었다제 그늘 속에 집은턱 하니, 또 한 채의 집을 짓고마당 가득 풀을 키웠다집은 우거진 그늘 안고 누웠다이곳에 살던 사람들밖의 세상으로 떠나보내고집은 비로소 집에서 벗어나그늘 속으로 내려앉았다집을 세운 사람들 품고,낑낑대는 강아지 한 마리의 밤도아늑하게 품어 키웠다이제 새벽 별빛만 뜰팡 위로 구른다사람들이 떠나자 집은비로소 허물을 벗어버리고한 채의 그늘로 돌아가집 속에 집을
발아래 놓인 구두 한 켤레한동안 나를 잘 따르지만이내 제 길 벗어나한밤 어둠을 싣고 돌아온다 낯선 골목길 몰고 다니다파도에 지쳐 돌아와서로의 뒤축을 물다등 돌려 떠오르는 섬아침마다 구두는 내 앞에무릎을 낮추고 등을 대지만밤늦게 나를 끌고 와물 빠진 갯벌에 처박아 둔다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이 관성깊이가 닿지 않는 구렁 안에서소는 결코 제 고삐를 풀고걸어 나오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현관 안에 황소 한 마리씩 키운다. 그 황소는 밤마다 어둠을 되새김질하며 내일 하루를 기획한다. 그러나 그 계획은 물거품으로 스러지기 일쑤일지도 모른다.
바위에 길을 새기려그는 새벽마다 집을 떠났다발자국에 마음을 비워 담았다매일 바위를 파 들어가며연장에 실려 오는 소리 들릴 때그는 하늘을 향해서온 마음 모아 기도했다어둠을 열고 돌 속으로 들어가돌이 깨지는 아픔에 갇혀도그는 끝내 굳게 쥔 연장을내려놓지 않았다연장은 팔이 되고그의 다리가 되었다바위 결을 따라 시간이 흘러,석상에 피가 돌고 눈을 뜨자그는 돌 속으로 스며들었다장인의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여기 한 평생 돌을 끌어안고 돌을 다듬어 생을 완성해온 사람이 있다면 그를 일러 장인이라 할 수 있을지. 그는 새벽마다 일어나 싸늘한 돌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우리 집 우물은 일 년에 한 번씩 바닥을 쳤다그해 수확한 밀을 빻기 위해 새벽부터 밀을 일었다 큰 대야에 물을 길어 올리면, 오후 서너 시경에 몇 가마 밀을 다 일 즈음 우물은 바닥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도 일렁이며 푸른 별빛을 살려 내던 우물이 모로 돌아누웠다우물이 바닥을 보이면 그 위로 지나가는 구름이 잠시 그늘은 쏟고 갔다 우물가 팽나무는 기운이 떨어지고 장독대 항아리도 서늘한 침묵을 쓰고 웅크렸다그날 밤 잠이 오지 않는 나의 귓가에 집이 어둠 속으로 강물 끌어당기는 소리 들렸다 집은 신음 소리를 내며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새벽은 숫돌에서 푸르게 날이 섰다어둠 속에서 낫을 미시는 아버지 어깨가두꺼운 어둠 벽을 무너뜨렸다새벽 들길에 이슬 한 짐 지고 오셨다내의 아침잠에서 깨어날 즈음안마당에 부리시던 아버지 지게어둠 속에서도 점점 부풀어 올랐다아버지 뒷동산을 지고 일어서셨다마당에 가득 풀들이 튀어 올랐다고요한 뜰 위로 생기를 불어넣으며집 안은 온통 풀 내음에 출렁거렸다하루가 새 길을 트고 있었다종아리에 묻은 풀씨 쓸어내리며아버지 베잠방이 주머니에서샛노란 참외 두 개를 내놓으셨다삼베옷에 쓱쓱 문질러 낫으로 깎아주시던달고 시원한 맛 속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엎드려 숙제를 하는 창가에 풍뎅이 한 마리 붕붕거렸다호박 꽃잎마다 벌이 잉잉대며 날았다담장에 매달린 조롱박에 고추잠자리 앉았다 떴다길가 웅덩이에는 방개가 종종거렸다둠벙의 잔잔히 이는 물살 주위를 구름이 에워쌌다바람은 자주 강아지풀의 콧등을 훔치고 갔다밤이 되면 목마른 별들이 쏟아져 내려와,두레박으로 우물 길어 목을 축이고 올라갔다등을 밝히면 담장의 나무들이 다가와 둘러앉았다새벽까지 풀벌레들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우리 집은 언제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어린 날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실루엣은 우리들 생을 앞으로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새들은 제 이름 부르며 노래하고꽃들은 제 이름으로 피어난다언어와 사물의 일체화일물일어의 완벽한 실현꽃은 이름을 낳고 그 이름이꽃에 완벽히 육화될 때이름은 다시꽃을 낳고,이름은 가고 꽃만 남은완벽한 언어의 구체화시심과 시상이 절로 익어봄에 잉태되는 위대한 시자연과 언어와 시인이 일체 되어꽃은 제 이름을 온몸으로 쓰고 있다시인은 때로 사물을 보고 곧바로 거기에서 얻은 감흥을 즉석에서 노래할 때가 있다. 순간적으로 받은 크고도 깊은 감동을 그 감흥에 적확한 언어로 표현할 때. 그 순간은 시인과 사물과 언어가 삼위일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그대와 나가까울수록 더욱 멀고멀수록 너무 가깝지요해남군 삼산면 구림리동백숲에 와서그대를 생각합니다때로는 그리움이 큰 힘 되어비탈길 험한 산맥 버티어도잠시 그 강물 너무 깊어나는 동백 붉은 꽃잎에홀로 길을 잃었습니다봄 오기 전 먼저 피어나이 봄 가기 전제 꽃잎 거두어 동백은 앞서 갑니다피고 지는 꽃잎 하나 두고저 산 이 골짜기 저리 깊은데외로운 사람들 발자국 찍고 와서떨어지는 꽃잎 하나두 손으로 감싸고기뻐 어쩔 줄 모릅니다땅에 져서야 더 활짝 피어나는 꽃밤이 와서잎도 꽃도 어둠에 묻힙니다낮에는 물이 꽃잎에 취해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별들이 아름다운 것은서로가 서로의 거리를빛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하루의 일을 마치고허리가 휘어 언덕을 오르는사람들 발 아래로 구르는 별빛,어둠의 순간 제 빛을 남김없이 뿌려사람들은 고개를꺾어 올려 하늘을 살핀다같이 걷는 이웃에게 손을 내민다별들이 아름다운 것은서로의 빛 속으로스스로를 파묻기 때문이다한밤의 잠이 고단해문득, 깨어난 사람들이새벽을 질러가는 별을 본다창밖으로 환하게 피어 있는별꽃을 꺾어부서지는 별빛에 누워들판을 건너간다별들이 아름다운 것은새벽이면 모두 제 빛을 거두어지상의 가장 낮은 골목으로눕기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뻐꾹새 소리에 귀가 머는 봄마을 사람들은 매일 바다로 나가소금꽃이 피기를 기다렸다흰 파도의 눈부신 포말이천수만 갯벌을 따라 젖어오고바람은 파도를 일구어 고랑을 냈다소금이 오기를 기다리며깊은 해안의 벼랑을 따라 걷다낮달을 안고 돌아온 날은당산마루 숲에 송화 가루 번진다마을 사람들이 찍고 간 발자국마다흰 별이 가득히 쏟아졌다한편의 시적 발상은 하나의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부터 비롯하는 경우도 있다. 특이하거나 인상적인 시어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에서 시의 씨앗을 구하기도 하고. 단문으로부터 시상의 전개가 이루어지며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일생 동안을 저 어둔 하늘 속에텃밭 일구어 빛을 뿌려 온 사람한낮의 고통을 건너와매일 밤 등불에 심지 돋우고등피 문질러 세상을 닦아 온 사람어둠 속 늘어가는 등을 헤아리며불빛 다하여 새벽 올 때까지 깨어도우리 그의 마음 한 켠 바라볼 수 없는데밤마다 빛을 심어 세상을 일구는 사람그의 등불 아래서우리들 잠은 이렇게 다디달아꿈결마다 어깨에 와 닿는 그의 손길한밤 내 소를 몰아 어둠 밭 쟁기질하는 사람어느 날 어두운 그림자에 싸여 비척일 때불현 듯 내 가슴에 와 찍히는 괭잇날누구였을까, 스스로 모습을 지우며우리들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진실을 향한 고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우리가 한세상 무너지며 달려와빈 가슴으로 설 때,하늘 가득 박힌 별들이여온 하늘을 위하여태어난 그 자리를 지키며일생을 살다 가는 사람들별은 왜,어두운 곳에 선 이들의 어깨 위로만살아 오르는가휩싸인 도시를 빠져 나와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만 빛을 뿌리는가숨죽여 흐르는 찬 강물에 누워이 한밤 새도록 씻기우는 별빛,새벽이 닿아서야소리 없이 강심을 밀고 올라와가장 맑게 차오르는 별을 본다젊은 날 변두리에서 시를 쓰며 자취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대학원에 다니며 조교 일을 하기도 했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나의 별은 내가 볼 수 없구나항시 나의 뒤편에서나의 길을 비춰 주는 그대여,고개 돌려 그를 보려 하여도끝내 이를 수 없는 깊이일생 동안 깨어 등을 밝혀도하늘 구석구석 헤쳐 보아도나는 바라볼 수가 없구나우리가 삼천 번 더 눈떠 보아도잠시, 희미한 그림자에 싸여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는 사이이 세상 가장 먼 거리를 질러가는 빛이여어느새 아침은 닿고,진실로 나의 별은 나의 눈으로볼 수가 없구나이 세상 사물 중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 가운데는 모순의 진실을 간직한 것이 있다. 그 중 여러 면에서 대표적인 것이 별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얼어버린 저 폭포 속울어야 할 내일잠겨 있다절벽 가르다결정(結晶) 내보인 채누구도 품을 수 없는깊은 산 뿌리에 닿아속 깊이 젖고 있는뜨거운 몸살빙벽,침묵 가파른 계곡을 일구는저 심장 속에얼음보다 더 차가운 피살아 숨차게 뛰놀고 있다멈춰버린너와 나의 약속그대의 절대 사랑굳어버린 것은 얼음만이 아니다그대는 얼어붙은 빙벽 앞에 우뚝 서 온 마음 모아 바위를 응시해 본 적 있는가. 겨울이면 폭포는 단호히 얼어버려 스스로를 침묵 속에 더 깊이 가둔다. 온 산의 갈참나무들 그 폭포 앞에 눈빛 조아려 숨 고이고 있을 때.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너의 진면목 바로 이때다저편 능선으로 싸늘한 노을잔잔히 걷혀가고 있을 때,이 세상 모두 네 어깨에 와 기댄다숲의 믿음이 얼음 속에 뿌리를 묻을 때너의 빈 잎눈마다 차오르는 꿈어느새 하늘엔 별이 싹튼다목덜미로 흐르는 싸늘한 빛서서히 어둠에 침몰하는네 허리에 기대어또 지친 하루의 하늘을가슴 속에 묻는다겨울 사랑 오래 참고 견디는 것,어둠이 와도 너는 죽지를 접지 않는다언 발 저리도록 눕지 못한다흐려지는 산 밑 마을을 배경으로마른 그림자 네 발등을 덮는다어둠 깊어 익어갈수록사위(四圍)의 밤이 너를 골목처럼 가두어도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한 사내 어둠 속에서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돌고 있다그가 딛고 온 시간의 벼랑얽히고설킨 세월의젖은 주름을 펴면 얼마나 될까쉬지 않고 어둠을 뚫는바퀴의 하얀 살안으로 당차게 휘감은어둠의 끈얼마나 힘차게 페달을 밟고 나가야저 어둠은빛이 되는 것일까한 사내 두 어깨로어둠의 가파른 파고를 가른다운동장이 눈 마당처럼 환해진다사내의 끈질긴 생의 둘레하나의 정점으로 휘감기며단단하게 조여진다거기, 겨울나무하나의 섬을 품고 서 있다어둠 속에서 자전거 타고 운동장을 쉼 없이 돌고 있는 사내를 본 적이 있다. 눈이 내린 뒤에도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어둠 다 가고보아라,이 아침을 지고 일어서는 산우뚝 일어나 나래치는 산한 시대의 밤을 밀어내고큰 산이 태어난다계룡이 어깨 펴 깨어나고 있다밤새 찬바람 몰려와계곡마다 굳게 잠겨도산봉우리 끝에서 반짝이는 별그 별빛 하나씩 가슴에 품고새벽 새 빛으로젊은 산줄기 차오르고 있다힘차게 굽이치고 있다얼마나 먼 길이었던가오늘 우리가 선 이 자리열두 번 쓰러져 다시 일어선 비탈에서백 밤을 새워 하나로 달리는길이 열린다어둠 속 터오는 새 아침 위에여기, 산 하나가 있다우리 온 길 뒤돌아어디, 가슴 아픈 일묻어 아니 둔 곳 있으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이제, 아이들은눈사람을 만들지 않는다잠시의 위엄 뒤에스스로 무너질 우상은 쌓지 않는다어깨에 눈 받으며섞어 치는 눈밭에 서 있을 뿐환호성을 올리며눈을 굴리고, 그들이 꿈꾸는사람의 눈썹과수염을 달지 않는다잠잠히 서 있던 소나무 어깨를 부비며무거운 눈 짐 들판에 쏟아 부리듯아이들은 굴려온 눈덩이를계곡 속에 박아 놓는다굴러 내리는 눈덩이에돌팔매를 날린다어린 날은 첫눈의 설렘을 안고 다가오는 성탄절을 기다리곤 하였다. 겨울 방학을 애타게 기다리며 겨울이 깊어지기만을 손꼽기도 했었다. 얼음이 얼면 앞 논에 나가서 썰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