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몽골(Mongolia)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배를 번갈아 받다가 1912년 청나라 몰락 후, 1921년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몽골은 1921년 7월 11일을 건국일로 기념하고, 이날을 나담 축제(Naadam)라 하여 거국적인 행사를 벌인다. 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내몽골은 후금이 건국할 때부터 원나라 제국의 옥새를 후금에 바치고 청의 황제를 대칸(大汗)으로 모셨으나, 외몽골은 청에 대항하다가 멸망했다. 내몽골은 지금까지 중국의 영토 네이멍구로 남아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몽골은 외몽골이다.
스위스 루체른(Luzern)은 북유럽의 젖줄인 라인강 상류와 롬바르드 지방 사이에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알프스산맥에 걸쳐 있는 스위스의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다. 루체른은 루체른 주의 주도(州都)이지만, 인구는 겨우 6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루체른은 8세기경에 베네딕투스의 수도회의 장크트 루시아리아 수도원이 설립되면서 형성된 마을로서 루체른이란 ‘빛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루체른은 1178년 자치시(自治市)로 인가받았으나, 1291년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4세가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수도원과 도시를 매수하자, 주민들
스위스에서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인 융프라우(Jungfrau: 4158m)는 독일어로 ‘젊은(Jung) 여인(Frau)’이란 의미라고 하며, 2001년 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알프스 계곡 입구인 인터라켄(Interlaken: 567m)에서 산꼭대기인 융프라우요흐역(Jungfraujoch: 3,454m)까지는 약 9.3㎞까지는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2시간 30분이 걸린다. 인터라켄 동역(Ost)에서 출발하는 산악열차는 동쪽의 그린델발트역(1034m)으로 올라가는 노선과 서쪽 라우터브루넨(Laut
유럽에서 가장 높은 알프스산맥은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데, 최고봉인 몽블랑(Mont-Blanc: 4158m)은 프랑스의 샤모니(Chamonix)에서 올라가고, 스위스에서 최고봉인 융프라우봉(Jungfrau: 4158m)은 해발 1034m인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서 올라갈 수 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융프라우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주와 발레주 사이에 있는 설산인데, 융프라우란 독일어로 ‘젊은(Jung) 여인(Frau)’이란 의미라고 한다. 융프
스위스의 제네바의 론강 북쪽 신시가지에는 수많은 국제기구가 있다.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제네바는 영어로 제네바라고 하지만, 현지인들은 프랑스어로 '주네브(Genève)'라고 부른다. 제네바는 제네바주의 주도(州都)이자 취리히, 바젤에 이어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도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다.신시가지 국제선 열차인 코르나뱅 역(Garede Cornavin)과 국내선 열차 오비브 역(Eaux- Vives)이 있는데, 스위스 영토인데도 프랑스 철도안내소(SNCF)와 스위스 국철 안내소(CFF)가 따로 있을 만큼 프랑스
스위스에서 가장 서쪽으로 돌출되어 삼면이 프랑스에 둘러싸인 도시 제네바(Jeneva)는 스위스에서도 매우 이색지역으로 꼽힌다. 도시는 영어로 제네바라고 하지만, 현지인들은 ‘주네브(Genève)’라고 부른다. 제네바는 제네바주의 주도(州都)이자 취리히, 바젤에 이어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도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다. 제네바의 신시가지 국제선 열차인 코르나뱅 역(Garede Cornavin)은 스위스 영토인데도 프랑스 철도안내소(SNCF)와 스위스 국철 안내소(CFF)가 따로 있을 만큼 프랑스 영향이 크다. 알프스 계곡에서
스위스는 동쪽에 오스트리아, 서쪽에 프랑스, 남쪽에 이탈리아, 북쪽으로 독일과 인접한 나라서 남한의 절반도 되지 않는 4만㎢(남한 9만 8000㎢)에 서울시 인구보다 적은 약 900만 명이 살고 있다. 오랫동안 신성로마제국으로서 유럽을 호령하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도 1800년 초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1차대전에서 패한 뒤 영토 분할로 오스트리아도 남한보다 작은 8만 3855㎢이고, 인구도 1000만 명 안팎이다.(자세히는 2023.10.10. 오스트리아 개요 참조)기원전부터 스위스 지역에 정착했던 사람들
오스트리아에서도 고산지대인 잘츠부르크의 가장 깊숙한 산골 마을인 할슈타트(Hallstatt)는 BC 2000년경부터 세계 최초로 소금 광산(Salzwelten)을 개발한 지역이라고 한다. 할슈타트란 지명도 이곳에 정착했던 겔트인들이 소금(Salz)을 ‘회색 황금’이라고 하는 겔트어 ‘hal’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높은 고산에서 흘러내린 빙하수가 계곡에 갇혀서 호수가 된 ‘할슈타트 호수’는 ‘잘츠카머구트의 진주’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1965년 제작된 뮤지컬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소개되기도 했다.(자세히는 2023.12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약 320㎞ 떨어진 도시 잘츠부르크(Salzburg)는 독일어로 '잘츠'가 소금(Salz), 브루크(Burg)는 ‘성 또는 도시’이니, ‘소금의 도시’란 의미이다. 잘츠부르크 주도(州都)인 잘츠부르크는 해발 1500~3000m의 고산지대인데, 남동쪽으로 약 29km 떨어진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는 독일어로 ‘소금(Salz)’, 황제의 창고(Kammergut)’라는 지명이다. 잘츠카머구트는 잘츠부르크 시내를 관통하는 잘차흐강을 통해서 소금을 실어 나르던 선착장이었다. 알프스산맥인 잘츠
잘츠부르크(Salzburg)는 해발 1500~30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로서 '잘츠'는 독일어로 소금(Salz), 브루크(Burg)는 ‘성 또는 도시’이니, ‘소금의 도시’란 의미이다. 잘츠부르크의 산골 마을 할슈타트(Hallstatt)는 BC 2000년경 세계 최초로 소금 광산을 개발했던 지역으로서 인정받아 1997년 마을 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소금 생산으로 부유한 도시가 된 잘츠부르크는 일찍부터 음악·미술 등 각종 예술이 발달했으며, 잘츠부르크 시내를 흐르는 잘차흐강(Salzach River)은
잘츠부르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잘차흐강(Salzach River)을 중심으로 호헨부르크 고성이 있는 산기슭을 배경으로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북쪽으로 쭉 뻗어 '성 슈테판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를 구시가지라고 하고, 트램이 달리고 미라벨 정원이 있는 강북을 신시가지라고 한다. 잘차흐강 위에는 마카르트 다리(Makartsteg)를 비롯하여 슈타트 다리, 모차르트 다리, 논탈어 다리 등 많은 다리가 있는데, 마카르트 다리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에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카라한(H von Karaj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약 320㎞ 떨어진 잘츠부르크(Salzburg)는 해발 1500~30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다. 잘츠부르크란 독일어로 '잘츠'가 소금(Salz), 브루크(Burg)는 ‘성 또는 도시’다. ‘소금의 도시’란 의미이다. 아시아와 달리 유럽에서는 지질 구조상 암염(巖鹽)이 많아서 잘츠부르크의 산골 마을 할슈타트(Hallstatt)는 BC 2000년경 세계 최초로 소금 광산을 개발했다. 할슈타트란 지명은 ‘회색 황금’이라고 하는 ‘소금(Salz)’의 고대 겔트어 ‘hal’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잘츠카머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약 330㎞ 떨어진 잘츠부르크(Salzburg)는 해발 1500~ 30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다. 잘츠부르크로 가는 중간에 고대도시 멜크(Melk)가 있는데, 멜크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성립하기 전 130년 동안 다뉴브강 유역의 오스트리아를 지배하던 바벤베르크 왕조(Babenberg: 976~1106)의 수도였다.지리적으로 동쪽으로 빈과 118㎞, 서쪽으로 잘츠부르크와 210㎞, 북서쪽으로는 체코의 중세도시 체스키크롬로프(Český Krumlov)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인 멜크는 독일의 남부 슈
빈 국제공항에서 빈 시내로 들어오는 외곽 도로변에 중앙묘지가 있다. 중앙묘지는 1874년 당시 빈 시장 칼 뤼거(Karl Lueger)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 유명 음악가들의 무덤이 시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곳에 조성한 공동묘지다. 중앙묘지는 UN사무총장과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역임했던 쿠르트 발트하임(Kurt Waldheim: 1918~ 2007) 등 정치인, 종교계 지도자, 음악가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을 참배하러 연간 200만
빈 시내에서 D번 트램을 타고 외곽인 벨베데레 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벨베데레 궁(Belvedere)이다. 1697년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가의 황제 군사령관 프란츠 오이겐(Franz Eugen von Savoyen–Carignan: 1663~1736) 공작은 빈 시내와 떨어진 초지와 농지뿐이던 이 이곳을 매입하고, 1717년 건축가 힐데브란트(Hildebrandt)에게 주거용으로 벨베데레 하궁(Unteres Belvedere)을 짓게 했다. 그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튀르크 전쟁 때 총사령관으로서 큰 공을 세우고, 합스부르크
빈은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도로를 기준하여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은 1857년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1848~1916)가 도시의 성벽을 허물고 넓은 대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는 도보로 둘러볼 수 있지만, 링 바깥은 트램이나 지하철을 타야 한다.빈 시내에서 남서쪽에 쉔브룬 궁전(Schloss Schonbrunn)은 당시 유럽의 초강대국 프랑스와 필적하는 합스부르크가의 레오폴드 1세(Leopold I: 1658~1705)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하여 16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는 국력이 커지면서 인스브루크의 호프부르크 궁을 모방하여 100여 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빈의 호프부르크 궁을 완성하여 1440년 수도로 옮겨왔다. 이후 빈은 신성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수도이자 예술, 과학, 음악, 요리의 중심지가 되었다. 1차 대전 후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호프부르크 궁은 여러 왕을 거치면서 다양한 양식으로 증개축되어 지금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변했다.962년 교황 요한 12세는 프랑크족인 작센 왕조의 오토 1세에게 ‘신성 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Vienna)는 1278년 합스부르크가의 독일왕 루돌프 1세(Rudolf Ⅰ: 1273~1291)가 보헤미아의 왕 오타카르 2세(Ottokar II)를 치러 가던 중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승리를 챙긴 후, 맏아들 알브레히트 1세에게 주었다. 1440년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이자, 1805년부터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는 영어식 표기이고, 오스트리아인들은 빈(Wien)이라고 말한다. 지리적으로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산이 많은 국가 중 하나여서 높은 산만큼 계곡도 깊다.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번화한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가 끝나고, 좁은 헤르초크 프리드리히 거리부터 구시가지(Altstadt)다.구시가지는 600년 이상 유럽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발자취가 곳곳에 많이 남아있어서 인스브루크를 ‘알프스의 장미’라고도 한다. 구시가지 거리의 양쪽은 라우펜이라고 불리는 천장이 낮은 고딕식 아케이드 보도인데, 중세도시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장원, 옷 가게, 술집․ 여관이나 호텔 같은 점포마다 입구에 파마머리나 옷․ 술잔 등을 특징 있게 철제 간판이 보도 쪽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문맹자가 많았던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nsbruck)는 알프스산맥 동부 해발 574m의 고지대에 있는 산악도시다. 인스브루크는 지리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서쪽에 있어서 남-북으로 이탈리아·독일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오히려 수도 비엔나(Wine)와는 거리가 멀어서 국제적인 교통의 중심지다. 인스브루크는 이탈리아에서 브레너 고개를 넘어 독일로 이어지고, 또 스위스에서 서부 유럽으로 연결되는 주요 무역로의 교차점으로서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지로 발달했다.인스브루크란 지명은 협곡 사이를 흐르는 인강(Inn)에 놓인 다리가 교역로 역할을 하여 ‘인강(I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