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터키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

앙카라 시내 중심지인 앙카라 중앙역(Ankra Gari)에서 도보로 약 5분쯤 떨어진 곳에 한국 공원(Ankara Kore Parkı)이 있다. 한국 공원은 1971년 8월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앙카라시가 부지 1만㎡(약 3000평)를 제공하고, 서울시가 이곳에 6·25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목숨을 바친 튀르키예군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원을 조성하여 1973년 11월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50주년에 맞춰 앙카라시에 헌정한 것이다.

기념탑 중앙에 있는 제단
기념탑 중앙에 있는 제단

튀르키예는 6·25때 UN 16개국 중 미국, 캐나다, 영국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1만 5000명의 군대를 보내주어 우리를 도와준 혈맹이다. 튀르키예군은 1950년 10월 17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때까지 연 병력 2만 1212명이 경기도 용인시 김량장리 전투와 판문점 동북부 네바다 전투 등지에서 큰 전공을 세우면서 전사자 721명, 부상 2,147명, 실종 175명, 포로 346명이 희생됐다. 희생된 장병들은 다른 외국군 장병들과 함께 부산시 남구 대연동의 유엔군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다른 희생자들은 다수 본국으로 이장했지만, 튀르키예는 한번 매장하면 이장하지 않는다는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서 그대로 있었다.

공원 표지석
공원 표지석

앙카라 한국 공원은 튀르키예 한국전 참전 희생자들의 위령탑 공원인 셈인데, 매년 6월 25일이면 이곳에서 앙카라 주재 한국대사관과 튀르키예 참전용사협회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 공원은 앙카라 시내 네거리의 가각지점에 있어서 찾기 쉬울 뿐만 아니라, 특히 개방형 쇠창살 울타리에 튀르키예 국기와 태극기 문양을 연속무늬로 장식하고 있어서 멀리서도 한국 관련 시설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낯설고 물선 머나먼 이국땅에 두 나라의 인연과 우호를 알리며 상징물이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도로 한쪽은 지하차도 입구여서 약간 불편한 점이 있다.

공원 입구
공원 입구

한국 공원의 입장료는 무료이고, 공원 안에 들어서면 입구 오른쪽에 한국식 육각형 정자와 공원 한가운데 왼편에 9m 높이의 4층 석탑이 있다. 그동안 세 차례 앙카라를 여행할 때마다 한국 공원을 찾아가고 있지만, 공원은 관리인이 있긴 해도 관리가 매우 소홀한 것 같았다. 아침 늦게까지 문이 닫혀 있거나 오후에도 일찍 문을 닫아서 이곳을 찾은 한국 여행객들은 공원에 입장하지도 못한 채 울타리 틈새로 사진을 한두 장 찍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념탑 벽면에 새긴 비문
기념탑 벽면에 새긴 비문

공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탑’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이미지화했다고 하지만, 어린이 장난감인 레고나 블록쌓기처럼 밋밋하고 투박해서 값싼 조형물 느낌이다. 기념탑의 기단부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제단이 있는데, 제단에는 한국의 유엔군 묘지에 묻힌 흙을 일부 채취하여 이곳에 옮겼다는 내용을 한글과 튀르키예어로 나란히 소개하고 있다. 기념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한국전에서 희생된 773명의 튀르키예 병사들의 이름과 계급, 출생 연도, 사망 일자 등을 빼꼼하게 새겨 두었다.

한국전쟁 희생자 명부
한국전쟁 희생자 명부

기념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한글로 ’한국 참전 토이기 기념탑’이라고 새겼는데, ‘토이기’란 50년 전인 1973년 당시 ‘터키(Turkey)’의 한자식 표현이어서 지금의 눈으로는 매우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2023년 9월 현대자동차(주)에서 10개월간 보수공사를 하면서 관리실을 새로 짓고, 전통 한국 양식의 정자인 육각정을 '우정의 집(Kardeşlik Kamelyası)'이라고 새로 설치하여 휴식 공간으로 만들면서 ‘터키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이라고 명판을 교체했다. 그렇지만, 서울시에서 조성하여 앙카라시에 헌정한 것이어서 다른 부분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에 국내에는 1974년 9월 튀르키예군의 격전지였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에 ‘튀르키예군 참전비’를 세웠고,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한 앙카라시는 1977년 5월 여의도에 ‘앙카라 공원’을 조성했다. 지하철 2호선 샛강역 3번 출구 옆에 조성된 앙카라 공원은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의 휴식 장소로 인기가 높다.

한국식 정자 팔각정
한국식 정자 팔각정

1992년 8월에 튀르키예의 역사와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앙카라 전통 포도원 농가주택’을 지었는데, 2층 목조건물의 1층은 이슬람식 기도실, 거실, 주방이고, 2층은 응접실, 객실, 침실 등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앙카라의 포도원 농가에서 직접 사용했던 가구류 54점, 주방용품 296점의 전통 생활기구와 농기구 18점 등 8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16세기 초 오스만튀르크 제국 시대부터 혼례나 축제 때 입던 전통의상과 은거울 등의 수제품은 현지에서도 귀중품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한다. 앙카라 공원도 노후화되자 2023년 9월 현대자동차(주)의 지원으로 1년 동안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면서 ‘자매공원’이라고 명칭을 바꿨다.

앙카라 하우스
앙카라 하우스

우리도 현재 한국 공원에서 고작 기념사진을 찍고 나오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공원 한쪽에 튀르키예 병사들의 영웅적인 전투나 활동 모습과 전쟁 후에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소개하는 홍보관을 만들어 앙카라시에서 관리하게 하거나 한국 정부가 운영하면서 공원을 찾는 튀르키예인들은 물론 외국인에게 발전된 한국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 많이 아쉽다.

기념표지석
기념표지석

세계는 정치적 이념이 같아서 동맹을 맺고 우방으로 지내는 국가들이 많지만, 세계에서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나라가 둘 있다. 하나는 튀르키예이고, 하나는 헝가리(Hungary)다. 흔히 튀르키예가 6·25때 한국을 도와준 것에 대한 수사학적 표현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 돌궐족(突厥族)을 포함한 다민족국가였던 대제국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망한 뒤 서쪽으로 달아난 돌궐이 곧 오스만 튀르크로서 돌궐은 튀르키예의 다른 이름이라고 중학교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인류학적으로도 튀르크인들은 우리와 비슷한 몽골리안의 특징인 몽고점이 있고, 언어학적으로도 우랄 알타이계에 속한다. 한편, 헝가리는 1241년 몽골인들이 지금의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인 판노니아(Pannonia) 지방인 도나우강 동쪽에 살던 켈트족을 몰아낸 흉노족(匈奴族)의 후예여서 국호를 헝가리로 삼았다고 한다. 구소련의 지배를 받던 헝가리는 구소련 해체 후 1989년 2월 동유럽국가 최초로 한국과 수교했다. 이런 점들에서도 우리는 반도 사관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재조명해 보는 자세가 아쉽다.

전통포도농원
전통포도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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