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사진출처= 연합뉴스 눈썹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모나리자(Mona Lisa) 또는 라 조콘다(La Gioconda, La Joconde)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다.간혹 모나리자를 이름으로 오인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이 그림의 ‘모나(mo
촛대바위란 이름을 붙여도 좋은 돌이다. 바닷가에 홀로 서서 영겁의 세월을 온몸으로 맞은 형상이다. 군살 한 점 없다. 돌의 뼈대만 남아있다. 그래서 강직하고 굳세다. 거친 바다와 싸우며 포말을 일구었던 전설이 녹아있다. 유약한 현대인의 마음을 다잡게 하는 묘한 기운이 서려있다. 이 돌은 제석산에서 출토된 산돌이다. 산돌은 강돌과 달리 거칠고 메말라있다. 하
미역냄새가 풍기는 섬 자락이다. 오랜 세월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았기에 풍화가 남다르다. 바닷물에 발 드리운 모서리마다 해조류가 넘실거린다. 섬 한켠에서는 물개 떼가 게으른 낮잠을 잔다. 남쪽 해안에몰린 낚시꾼들이 월척을 기다리며 지루함을 판다. 이 모든 풍경이 녹아있는 섬 풍경이다. 물론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무인도다. 그래서 더 신선하다. 섬
옥이 박혀 있는 초코석이다. 풍광이 수려한 산경을 닮았다. 첩첩으로 이루어진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크게는 단봉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보면 여러 겹의 산들이 단봉을 장식하고 있다. 안산쯤으로 붙어있는 작은 앞산은 단조로운 봉을 감싸며 입체감을 더한다. 그 바탕이 옥이어서 더욱 값지다. 좌대가 받치고 있지만 앉음새도 그만이다. 복잡한 도심생활 속에서
물고임이 좋은 남한강산 오석이다. 온통 돌전체가 호수만을 위해 형성된 양태다. 물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호수가 아니라 활화산의 분화구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산의 절반이 화산폭발로 날아가고 그 뿌리만 남은 형상이다. 그러기에 물고임이 넉넉하다. 호수석은 물고임이 좋아야 한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우면 더없이 좋지만 풍광이 좋아도 물고임이 빈약하면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연봉 아래 큼직한 쌍문이 뚫린 경석이다. 가파르게 오른 정상은 거친 물결처럼 아래로 흘러내려 연봉을 만들었다. 그 아래로는 넉넉한 언덕이 미지의 밀림처럼 단단하게 경치를 받치고 있다. 특히 산 아래 쌍굴은 참으로 시원하다. 이런 풍광은 산경보다 바다에서 볼 수 있다. 멀리 잔잔한 바다 위에 홀로 떠있는 통문섬이랄까. 쌍통문 사이로 연락선
양쪽으로 단애가 있는 오석이다. 단애의 격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넓은 평원은 아니지만 언덕위에 펼쳐진 계단식 경작지가 볼만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도리어 고상하다. 약간 틀어 앉은 모습이 친숙하고 연마된 절개지에 걸린 세월이 천년이다. 단애석 치고는 참으로 조용한 돌이다. 휘돌아 달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천 길 낭떠러지가 이어지지도 않는다. 도리어 손을 뻗으
덩치가 큼직한 오석이다. 중간에 주먹이 두 개는 넉넉하게 들어갈 정도의 호수가 있다. 그 주변은 봄날의 언덕처럼 잔잔하다. 매끄러운 피부가 손길을 끈다. 이런 돌을 수석인들은 애무석이라고 부른다. 손끝으로 만지고 감지하며 느끼는 돌이란 의미다. 본래 물고임이 넉넉한 돌을 집에 두면 부자가 된다는 일설이 있어 호수석 애호가들이 많다.이 돌은 황금모래가 깔린
덩치가 넉넉한 단애경이다. 수직으로 선 절벽위에 또 다른 산이 가파르게 서 있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가물가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랜드 캐년의 한 조각일까. 영겁의 세월에 깎이고 닳은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암벽을 전문으로 등반하는 산악인이라면 한번쯤 군침을 삼켜볼 만하다. 동굴과 절리가 잘 발달된 모습이 감상자를 빨아들인다.수석의 경치를 감상하기
괴목을 딛고 오석이 서있다. 몸통에 깊은 동굴을 간직한 모습이 범상치 않다. 머리에는 단봉을 이고 몸통은 추상 그대로다. 피부는 어린아이처럼 매끄럽고 부드럽다. 자연미를 한껏 자랑하는 모습이 얄밉다. 어찌보면 나무위에 앉은 올빼미 같기도 하다. 돌덩이일 뿐인데 이리도 많은 사념을 낳게 하는가. 그래서 수석이다. 이 수석의 연출에서 아쉬운 점은 좌대를 괴목으
초코석으로 형성된 입석이다. 둥글고 넉넉한 굵기가 좋다. 초코석 특유의 색감이 살아있어 단단하다. 하늘을 떠받들고 섰던 기둥의 한 조각일까. 지하 궁전의 주 기둥으로 사용됐던 토막일까. 상상의 나래는 끝이 없다. 기둥을 따라 깊이 파인 홈이 입체감을 더한다. 어찌하면 이리도 믿음직하고 든든할까. 수석은 기괴해야만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우둔하고 둔
이 돌이 과연 자연석일까. 처음 본 순간 눈을 의심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짙은 눈썹, 검은 눈동자는 애기 동자를 연상시킨다. 콧날은 조금 낮지만 작은 입을 앙다문 모양이 참으로 순진해 보인다. 얼굴선과 머리가 확연히 구분된 것도 경이로움이다. 옥천에서 탐석됐다는 이 수석은 문양석 가운데 인상석의 빼어난 형태미를 자랑한다. 한눈에 애기 동자의 모습을 알
왜국으로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여인이랄까. 자식의 입신양명을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랄까. 아무튼 큼직하게 선 돌은 양손을 마주잡고 무언가를 기원하고 있다. 그것이 개인적인 일인지 혹은 보다 장대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참으로 간절한 바람만 녹아있다. 오석으로 이만한 입석은 보기가 드물다. 돌밭에 가면 흔할 듯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소장자는 남한강 오석이란다. 그러나 보기엔 문경 구랑리 오석 같다. 피부가 너무나 곱고 매끄러워 속살을 연상시킨다. 생긴 것은 추상석으로 분류할 만큼 자유분방하면서도 절재미가 있다. 태생이 한 덩어리였을 돌이 바늘구멍도 없이 조밀하게 피부를 감싸고 있다. 보이는 질량도 넉넉하고 단단하다. 숱한 상상이 뇌리를 맴돈다. 수석 보는 재미를 새롭게 하는 돌이다.
자연스러운 풍치미가 어우러진 쌍봉석이다. 수반에 올려놓고 금모래를 깔아두면 바다에 떠있는 섬의 형태로도 볼 수 있다. 주봉의 웅장함과 부봉의 조용함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섬의 형상이 너무나 자상하여 늦은 가을을 연상시킨다. 단풍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석질은 퍼성해 보이지만 초코석에 가깝다. 배를 몰아 후미진 곳에 묶어두고 주봉에 올라 멀리 바다를 넘
참으로 자연스런 연봉 호수석이다. 주봉에서 흘러내린 봉우리가 조용히 아래로 달려 호수를 감싸고 돈다. 그 아래로 작은 구릉이 있어 호수에서 넘치는 물을 감당하고 있다. 수석 교과서에 나올 법한 지극히 이상적인 연봉석의 형태다. 물을 머금은 자태가 여름날 소나기를 맞은 산의 풍경이다. 앉음새도 절단한 것처럼 정연하다. 어찌 자연석이 이리도 완벽할 수 있을까를
복숭아 형태를 닮은 관통석이다. 관통석은 말 그대로 구멍이 뚫린 돌이다. 돌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자연스레 구멍이 뚫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귀하다. 이 돌은 관통석 가운데서도 유달리 특이하다. 수석의 몸체 크기만큼 큰 구멍이 뚫린 것이 청량감마저 준다. 덩치는 작지만 수석이 갖는 오묘함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다. 수반위에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있는 섬이다. 이런 형태미를 도형(島形)으로 분류한다. 고개를 숙인 듯 솟은 봉이 주봉을 감싸고 그 옆으로 동굴이 뚫린 작은 봉은 아기처럼 주봉의 품을 파고든다. 영겁의 전설을 간직한 바위가 봉우리를 이루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선남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사랑을 속삭였다는 얘기. 파도에 실려 온 어부가 하늘의 선녀를 만나 신선
남한강에서 채취된 초코추상입석이다. 여러 권의 책을 세워놓고 구부린듯 힘차고 당차다. 태초에 자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형상이 빚어졌을까. 궁금증이 가슴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지극히 절제된 형태미가 단조로운 듯 보이지만 그 속에 거칠고 강력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 단조로운 사각의 입방체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꿈꾸며 삶을 노래하는 역동성이 엿
조용하게 흘러내리는 단애석이다. 그 수가 위에서부터 5단에 이른다. 넓은 평야를 딛고선 산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위에 또다시 층층의 평원이 감상자를 사로잡는다. 초코석으로 이루어진 단애는 참으로 흔치 않은데 층층의 평원마저 아름다우니 더 귀하지 않을까. 돌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끓어올랐던 모든 것이 차분히 내려앉는다. 산꼭대기에 올라 멀리 평원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