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켈수스 도서관 앞에 개선문처럼 세워진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을 지나 고대 에페소 의회 건물이 있는 북문까지 약 500m가량 완만하게 이어진 경사진 도로가 ‘크레디아 거리(사제의 거리)’다. 크레디아 거리는 고대 도시 에페소의 행정과 종교시설이 있던 거리여서 크레디아(사제)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은 대리석 거리와 크레디아 거리를 구분한다. 크레디아 거리는 왼편으로 약간 구부러졌고, 대리석이 아닌 경복궁 근정전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돌로 포장된 도로가 약 500m가량 이어진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는 노예였으나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자유인이 되자, 은혜에 감사하며 세운 문이라고 한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에서 의회 건물이 있던 북문으로 향하는 길 오른편의 공중목욕탕 옆에는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5현제(五賢帝: 96~180) 중 한 사람인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기리는 하드리아누스 신전(Hadrian’s Temple)이 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황제 사후에 그의 에페소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서 입구에는 두 개의 아치형 문이 있다. 앞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을 새기고, 두 번째 아치문에는 메두사(Medusa)의 부조가 있다,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낳는 자식이 아버지보다 더 강력할 것이라는 신탁에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하게 했다. 그러나 그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간계로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등 세 여신이 다투다가 목동 파리스에 의해서 아프로디테가 최고 미인으로 뽑히면서 트로이 전쟁(BC 1500~ BC 1200)이 벌어졌다. 또, 두 번째 아치문 위에 새긴 메두사는 바다의 신 포르키스와 케토 사이에서 태어나 세 딸 중의 막내로서 머릿결이 곱기로 소문난 아름다운 처녀였으나, 자신을 아테네 여신의 미모와 견주려고 했다가 아테네 여신의 노여움으로 어금니는 멧돼지처럼 변하고, 머리카락 대신 뱀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로 변했다. 게다가 누구라도 메두사의 눈과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모두 돌로 변해 버렸는데, 페르세우스는 아테네 여신으로부터 청동 방패를, 헤르메스로부터는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 구두를 빌려 신고 메두사를 죽였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옆에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세운 최초의 병원인 아스클레피온(Asklepios)이 있다. 그는 의술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인 에게해의 코스섬(Kos)에서 살다가 신의 계시를 받고 이곳에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을 세웠는데, 제우스는 아스클레피온의 치료로 인간이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린다면 자기의 권위에 손상이 된다고 여겨서 번개를 쳐서 그를 죽였다. 지팡이를 뱀이 휘감고 있는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생명과 재생을 상징하는데, 이 모습은 오늘날 의사들을 상징하는 마크가 되었다. 아스클레피온 병원이 있었다는 표지석 뒤 병원 터로 보이는 곳과 폴리오 샘은 아스클레피온의 치료 후 이곳에서 목욕하면 치유가 된다고 하여 만든 것이다. 폴리오의 샘 옆에는 조각난 석판(石板)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원래 삼각형이었는지 파손된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삼각형 돌판에 승리의 여신 ‘니케(Nike)’가 새겨져 있다. 1971년 포틀랜드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던 캐롤린 데이비슨이 이 돌판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오늘날 유명한 나이키 상표의 로고를 만들었다. 당시 그는 이 로고를 단돈 35달러에 넘겼지만, 지금은 70만 달러가 넘는 가치라고 했다.

의회 건물 부근에는 헤라클레스 문(Gate of Heracles)이 개선문처럼 우뚝 서 있고, 그 왼편에는 엠마우스 기념비(뫼비우스 기념비)가 있고, 오른편에는 도미티아누스 신전(Temple of Domitian)이 있다. 코린트식으로 조각된 헤라클레스 문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도시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는데 위에는 니케 여신이 새겨져 있다.


엠마우스 기념비는 로마 공화정 때 독재자 술라(Sulla: BC 138~ BC 78)가 로마에 저항하면서 로마시민 8만 여명을 학살할 정도로 강력했던 북부의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6세(BC 135~BC 63)를 무찌른 것을 기념하고, 학살당한 로마인들의 넋을 달래주기 위하여 BC 86년 술라의 사위 엠마우스가 세운 것이다. 엠마우스 기념비 길 건너인 오른쪽에는 도미티아누스 신전은 1세기경 제2의 네로라고 하는 폭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인데, 그는 사도 요한을 파트모스섬에 유배시키기는 등 기독교를 박해하고 자신을 신격화하여 에페소에 2층 신전을 지었다. 그는 7m가 넘는 황제의 동상도 세웠으나 암살된 뒤 신전과 동상은 파괴되고 지금은 자재만 남아있다.


또, 바리우스 목욕탕(Varius baths)은 단순한 공중목욕탕이 아니라 휴식과 사교활동 그리고 초기 기독교인들의 세례 등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던 장소로서 입구에는 기독교 문양인 십자가 표지가 있다. 에페소 유적의 북문 매표소 부근인 위쪽 아고라(Upper Agora)는 정치, 경제의 중심 지역으로서 거대한 석주들이 길 양편에 세워져 있다. 도로 왼편에는 의사당과 소극장 오데이온(Odeon)이 있고, 오른편은 아고라(Agora)가 시장 역할을 했다. 1500명~2000명 정도가 관람할 수 있는 소극장은 시 낭송이나 작은 음악회나 행사를 열었으며, 오늘날 오디오(Audio)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이 처음 건설했던 에페소에서는 그리스 시대~헬레니즘~로마 시대의 건축양식을 모두 볼 수 있다. 대리석 기둥은 몸체· 기둥 받침· 기둥머리 등 세 부분으로 나누며, 건축양식은 도리아식(Doria)→이오니아식(Ionia)→코린트식(Corinth)으로 바뀌었다. 즉, 기원전 7세기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리아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도리아식의 특징은 홈파기로 파낸 기둥을 주춧돌 없이 직접 세웠으며, 기둥의 윗부분인 기둥머리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이 단조롭다(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헤파이스토스 신전 등). 또,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의 해안가인 이오니아(Ionia)의 전통 양식인 이오니아식은 도리아식과 달리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가늘고 우아한 기둥에 홈을 깊이 파서 명암을 나타냄으로써 수직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기둥머리는 물결이 휘감는 것처럼 소용돌이 모양이 특징이다. 이오니아식을 옆에서 보면 마치 장구처럼 중간이 약간 불룩한데, BC 560년 리디아의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BC 564~560)가 이교도들이 파괴한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오니아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아테나의 니케 신전,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 등). 한편, 기원전 5세기 후반 헬레니즘~로마 시대에 유행한 코린트식은 이오니아식과 큰 차이가 없으나, 기둥머리에 나뭇잎을 2단으로 겹쳐서 부각해서 매우 화려하지만, 이오니아 양식의 변형 일종이라고도 한다. 다만, 건물의 외부 기둥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주로 실내 기둥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도리아식은 남성적이고, 이오니아식은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여성적이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