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앙카라에서 동남쪽으로 약 320㎞ 떨어진 고원지대인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1960년대부터 기암괴석으로 알려져서 튀르키예의 ‘괴레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985년에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셰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카파도키아란 페르시아어 '카트파두카(Kat-patuka)'에서 유래한 말로서 '좋은 말들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아나톨리아(Anatolia) 지방에서도 중앙 지역인 카파도키아는 해발고도 800∼1200m인 분지형 고원지대이다.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서 아르메니아(Armenia) 고원으로 이어지며. 아시아와 유럽 대륙이 교차하는 이 지역에는 BC 8000년경부터 사람이 살면서 히타이트왕국부터 동로마제국까지 수많은 국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카파도키아는 약 6000만 년 전 에르지예스 산(Erciyes Mt.: 3917m)의 대규모 화산 폭발 이후 분출된 용암과 화산의 화산재가 굳어지면서 파샤바(Pasabag) 계곡을 비롯하여 데린쿠유(Derinkuyu), 피존 홀(Pigeon Hole) 등이 형성됐다. 9세기경 동로마인들이 이슬람의 압박을 피해서 이곳에 굴을 파고 숨어 살기 시작했다가 11세기경 오스만 제국이 완전히 통제하면서 완전히 잊혔다.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의 네브세히르 공항까지 비행기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앙카라에서 소금호수로 유명한 투즈괼을 거쳐서 고속버스를 타고 카파도키아까지 2시간 만에 160㎞ 거리를 달려서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카파도키아의 첫인상은 한창 개발 중인 우리네 신도시처럼 주변이 산만하고, 도로변의 기념품, 숙박업소와 음식점, 렌터카, 바이크 대여점 등 온통 관광객을 상대로 한 점포들이 무질서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카파도키아는 파샤바 계곡을 비롯하여 공항이 있는 네브세히르 지역, 아바노스, 위르귑(Ürgup) 등 네 지역을 말하지만, 동서 400㎞(서울역~부산역 398㎞), 남북으로 250㎞(인천~강릉 243㎞)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어서 하루나 이틀 사이에 모든 지역을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숙소에서 짐을 푼 뒤 제일 먼저 파샤바 계곡을 찾아갔다. ‘파샤’는 튀르키예어로 ‘장군’, ‘바’는 포도밭이라고 하지만, 파샤바의 수많은 버섯 형태의 바위들이 남근석 같다고 해서 러브 밸리(Love Valley)라고도 한다. 튀르키예어는 ’요정의 굴뚝 (Peribaca)’이라 하고, 영어도 ‘요정의 굴뚝(Fairy chimney)’이지만, 벨기에의 작가 피에르 퀼리포르(Pierre Culliford: 1928~1992)가 이곳을 여행한 뒤 영감을 받아 만든 ’개구쟁이 스머프(Les Schtroumpf)‘가 크게 유행하면서 ‘스머프 바위’로 불리기도 한다. 필명을 ‘페요(Peyo)’라고 한 퀼리포르는 스머프란 주인공 난쟁이를 창조했는데, 계곡 전체가 마치 동화에서 본 듯한 다양한 버섯 모양의 돌기둥들이 즐비하다.

파샤바 계곡의 입장료는 40터키리라 (한화 1400원)이지만, 뮤지엄 패스가 있다면 추가 요금은 내지 않는다. 파샤바 계곡 입구에는 낙타를 타고 험한 산길을 돌아볼 수 있는 상인들도 있고, 허름한 천막을 치고 음료수와 값싼 길거리음식을 파는 상인도 있다. 가장 높은 지대에는 15~6세기 비잔틴 제국에 쌓은 우치히사르 성(Uçhisar)은 튀르키예어로 ‘3개의 요새’라는 뜻이다. 지금은 사방으로 전망이 좋은 전망대로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도록 파라솔도 있고, 잠시 앉아서 음료수도 마실 수 있다. 전망대의 시설이나 서비스는 가히 가소롭기 그지없다. 이곳에서는 괴레메 골짜기의 전경은 물론 수도사들이 비둘기를 기르며 살았다고 하여 불린 지명인 피존 밸리(pigeon valley)와 화산 폭발로 카파도키아를 기암괴석 지대로 에르지예스 산(Erciyes: 3917m)까지 보인다.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괴레메 계곡(Göreme)인데, 괴레메는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로마제국 시대에 박해를 피해서 도망쳐 온 기독교도들이 숨어서 살던 곳이어서 붙여진 지명으로서 오스만제국이 기독교도들의 은신처를 몰랐는지 아니면, 그렇게 먼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것쯤은 묵인해 주겠다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독교도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서 신앙을 지키며 살았는데, 기암괴석 곳곳에 크고 작은 동굴과 비둘기집(pigeon hole)들은 전쟁과 침략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인간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괴레메가 땅 위로 솟은 카파도키아의 절경을 보여준다면, 데린쿠유(Derinkuyu)는 땅굴 도시다.

데린쿠유란 ‘깊은 우물’이란 의미인데, 로마 시대에 기독교 박해를 피하여 카파도키아의 험준한 파샤바 계곡으로 숨어든 기독교인들이 동굴을 파고 살았던 땅굴 도시다. 데린쿠유는 1963년 한 주민이 지하실 틈새로 닭들이 사라지는 것을 쫓아가다가 우연히 통로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는데, 지금도 발굴과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전체 규모는 미스터리다. 이 지역에는 원래 지상에 집들이 있었지만, 기독교 박해가 심해지면서 집 아래에 땅굴을 파서 살기 시작하면서 지상의 집들은 허울이 됐다.

데린쿠유는 입장권을 산 뒤,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데, 입구 옆에는 우리 시골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던 우물처럼 생긴 공간을 철망으로 막아두었다. 이것이 지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지상에서 물건을 내려주고 올려보냈던 두레박이 있던 곳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지하 동굴은 20층까지이지만, 관광객에게는 8층 깊이인 지하 55m까지만 공개하고 있다. 지하 동굴에는 지상과 똑같은 교회도 있고, 석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이 십자 형태의 구조와 둥근 천장 모양을 유지하고 있고,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내부의 보존 상태도 아주 좋다. 또, 갑작스러운 기습을 피하려고 기본 통로 이외에 비상 통로를 만들어서 서로 왕래해서 통로가 어디까지 연결되었는지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거대한 폴란드의 남부 도시 크라쿠프(Krakőw)의 소금 광산을 둘러본 눈에는 하찮은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오랫동안 바위 속 동굴에서 생활하던 괴레메에는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최근에는 이곳을 고쳐서 민박이나 호텔처럼 관광객을 맞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괴레메에서는 이러한 기암괴석 이외에 전통 도자기 제작과 전통 카펫으로 유명한데, 항아리 케밥으로도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