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아르테미스 신전터

튀르키예의 남서쪽에 있는 고대도시 에페소(Efes)는 기원전 1044년경 고대 그리스인이 건설한 도시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테네의 왕 코드로스(Codrus)의 아들 안드로클로스(Androclus)가 ‘멧돼지와 물고기를 만나는 곳에 도시를 건설하라’라는 신탁을 받고, 그곳을 찾아 헤매던 중 물고기를 잡아서 구워 먹으려고 불을 피웠을 때 에게해의 거센 바람이 불면서 불똥이 숲으로 튀어 불이 번졌다. 그때 숲에 숨어있던 멧돼지가 놀라서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도시를 건설한 것이 에페소라고 한다. 그리스 이후 헬레니즘, 로마,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에베소는 그리스어로 에페소스(φεσος), 라틴어로 에페수스(Ephesus), 튀르키예어로 에페스(Efes), 아랍어로 셀죽(Selchuk)이라고 불렸는데, 한국어로는 성경에서 에페소 또는 에베소로 기록되고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 조감도
아르테미스 신전 조감도

에페소는 우리가 그리스인으로 알고 있는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탈레스(Thales) 같은 철학자들의 고향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지중해를 통해서 로마로 가는 중간 항구도시로서 크게 번창했다. 129년 아우구스티누스 황제 때는 ‘로마제국의 5대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하여 소아시아를 통치하는 총독이 주재하는 도시가 됐다. ‘로마보다 더 로마답고, 그리스보다 더 그리스다운 도시’라고 불렸으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순교 당하지 않은 요한은 37년 예수 승천 후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에서 살면서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저술했고, 사후에도 이곳에 묻혔다. 에페소 유적 남문 매표소에서 가까운 셀주크에는 마리아가 살던 집터도 있다. 또, 사도 바울도 65년부터 68년까지 이곳에서 전도하면서 세운 에페소 교회와 그가 로마로 건너가서 선교하다가 갇혔을 때 옥중 서신을 보낸 것이 신약성경인 ‘에베소서’여서 매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기독교인이 성지 순례지로 찾아온다. 또,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2차 삼두정치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도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아르테미스 신전과 도시는 262년 고트족의 침략으로 모두 파괴되어 사람들에게 잊혔다.

아르테미스 여신
아르테미스 여신

1859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우드(J.T.Wood)가 에페소 유적지에서 원형극장을 처음 발굴한 데 이어 1865년 아르테미스 신전을 발굴했다. 발굴된 유물 대부분은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튀르키예 정부는 출토된 유물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은 우드 발굴팀이 적법한 허가에 의한 것이었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고대도시 에페소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켈수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신전 등 현존하는 로마는 물론, 폼페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등 고대 로마 도시 중 가장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하여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아르테미스 여신
아르테미스 여신

인천국제공항에서 에페소까지는 직항노선이 없고, 튀르키예 서부의 최대 도시인 이즈미르(Izmir) 공항을 거쳐서 갈 수 있다.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튀르키예 제3의 도시인 이즈미르주(Izmir)의 주도(州都) 이즈미르시에서 남쪽으로 약 50㎞ 떨어져 있는 에페소는 택시는 물론 정기노선 버스와 택시 돌무쉬가 있다. 이즈미르는 페르가몬 왕국의 유적이, 북쪽에는 고대도시 트로이(Troy)가 있지만, 1920년대 독립전쟁 때 문화유적이 대부분 파괴되어서 에페소나 트로이 등으로 가는 길목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카파도키아를 둘러본 우리 가족은 버스로 에페소에 도착했는데, 도시는 우리의 작은 읍 규모로서 에페소 유적 소개와 호텔, 음식점,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소크라테스상
소크라테스상

에페소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에페소 고고학 박물관은 입장료는 10유로(약 1만 6000원)인데, 뮤지엄 패스나 트래블 카드로도 가능하다. 한국어 음성 안내기도 있고, 전시된 유물 옆에 한글로 된 안내판이 걸려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의 관광객과 성지순례 코스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실은 조각상과 부조 등의 발굴 장소와 종류에 따라서 6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디어실에서 고대 로마의 번성한 모습과 항구도시 에페소의 역사와 풍경, 그리고 당시 시민들의 연설과 토론 장면 등을 볼 수 있다.

제우스상
제우스상

박물관에서는 청동기며 은화, 토기를 비롯하여 그리스 신화인 제우스, 에로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리고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5현제 중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검투사의 관 등이 볼만하지만, 인물조각상 대부분이 얼굴이 훼손되고 손발이 없다. 그것은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 동로마제국이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을 우상이라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또, 폭군으로 유명한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폐위되자, 시민들은 신전으로 달려가 파괴하여 그의 머리와 팔만 남은 것을 수습한 것이라고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상

에페소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기원전 550년경에 건축된 아르테미스 신전과 아르테미스 여신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18m 높이의 돌기둥 127개가 길이 137m, 폭 69m의 초대형 건물로서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아테네가 페르시아와 세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 후 최고로 발전하던 BC 447년부터 16년에 걸쳐 세운 파르테논 신전(돌기둥 높이 10m, 길이 69.5m, 폭 30.8m)보다 두 배 이상 큰 건물인데, 박물관에는 미니어처가 만들어져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특히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537년 이스탄불에 거대한 지하 궁전을 신축하면서 신전의 석재를 모두 뜯어가서 우상 숭배의 상징이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철저하게 파괴됐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상
아우구스투스 황제상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와 티탄족의 여신 레토(Leto) 사이에서 태어난 아폴론과 이란성 쌍둥이로서 아폴론은 태양신이 되고,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으로서 순결과 정절의 상징이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활의 명수로서 사슴 사냥을 좋아하는 사냥꾼으로 표시되어 이마에 반달 모양의 장식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에페소 유적지의 켈수스 도서관 길 건너에서 출토되어 제6전시실에 전시된 2개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유방이 각각 20개씩 달린 모습으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 즉, 이오니아 지방에서 전해오는 대지를 주관하는 키벨레 여신(Cybele)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다는 점에서 그리스 본토의 아르테미스 여신과 큰 차이가 있다.

에로스상
에로스상
성 마리아 교회터
성 마리아 교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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