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고왕국의 수도 멤피스는 폐허가 되어서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없고, 오로지 당시 왕들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짐작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오래전부터 이집트인들은 오래전부터 태양신을 믿고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생명의 방향으로 여기고, 태양이 지는 서쪽을 죽음의 세계, 악신의 세계라고 믿었다. 고왕국 시대에는 파라오를 ‘태양신의 대리자’라 하여 신격화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많이 만들었지만, 현실의 궁전은 나무나 흙벽돌 등으로 가볍게 지어서 왕궁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나일강 서안에 조성한 왕들의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중 멤피스박물관에서 대추 야자나무가 숲이 있는 좁은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약 2㎞쯤 가면, 고왕국 시대 최대의 공동묘지인 사카라(Saqqara)가 있다. 사카라는 남북으로 6㎞, 동서로 1.5㎞나 되는 넓은 지역인데, 멤피스를 포함해서 네크로폴리스 전체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사카라 유적 입장료는 600파운드(한화 1만 8000원)인데, 현재까지 사카라에서 발견된 피라미드는 14개다. 피라미드는 대부분 무너져서 흙더미처럼 보이거나 모래밭 속에 묻혀 있어서 지금도 곳곳에서 발굴이 한창인데, 사카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사카라 남쪽에 있는 고왕국 제3왕조의 두 번째 왕 조세르(Djoser:재위 BC 2668~BC 2649)의 계단식 피라미드다.

만일 사카라에서 조세르 피라미드와 임호테프 박물관만 관람한다면 무방하지만, 다른 무덤을 돌아보려면 워낙 넓은 모래사막이어서 10달러를 주고 낙타를 타는 것이 좋다. 또, 다른 네크로폴리스까지 돌아보려면, 우버나 인드라이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세르왕은 멀리 남쪽 누비아까지 원정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국력을 튼튼히 한 왕인데, 재상 임호테프(Imhotep:BC 2650~BC 2600)는 진흙 벽돌과 갈대 등을 깔고 직육면체로 만들던 무덤 ‘마스타바(mastaba)' 대신 돌로 6단을 쌓은 계단식 무덤을 처음 만들었다. 이런 발상은 도굴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무덤의 밑변은 동서 128m×남북 140m, 높이 약 60m로서 오늘날 아파트 20층 높이나 되는 거대한 건축물로서 학자들은 그를 ‘고대 이집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시 조세르왕은 이 피라미드를 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피라미드 속에 임호테프를 ‘조세르 왕 때 대 신관이자 미라를 만드는 외과 의사, 건축가, 박학다식한 행정가’라고 초석에 새겨서 넣기도 했다. 조세르 피라미드는 1881년 프랑스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처음 발굴했다.

조세르 계단 피라미의 내부를 관람하려면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매표소에서 일괄 입장권을 살 수 있다. 조세르 피라미드 내부는 장제전(葬祭殿)을 통해서 들어가는데, 높이 6.6m의 기둥 20개가 두 줄로 세워진 복도 끝에 6개의 둥근 기둥이 있는 방이 제단이다. 이곳을 지나면 안마당인데, 안마당에서는 3년마다 나일강의 범람이 끝나고 새싹이 돋아나는 겨울 첫 달, 첫째 날에 상하 이집트의 통합을 위한 세드 축제(Sed Festival)가 열렸다. 또, 안마당의 서쪽에는 코브라를 조각한 벽이 있는데, 코브라는 하이집트의 수호신 와제트(Waset)의 화신으로서 이집트인들이 나일강과 밀접한 생활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안뜰에서 약 30m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분홍빛 화강암의 작은 묘실과 2개의 방이 있는 조세르 피라미드 내부다. 피라미드 내부의 벽과 기둥은 파피루스를 형상화한 회랑이 왕을 섬겼던 신하와 관리들이 파라오가 내세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연결했다. 그뿐만 아니라 피라미드 옆에 장제전을 짓고, 또 동서 277m, 남북 545m의 넓은 공간을 높이 10.5m 석회암 담장으로 삥 두른 성채 같은 피라미드 복합단지(Pyramid Complex)를 만들고, 일정한 간격마다 보루를 만들고, 14개의 출입문도 만들었다. 지금은 피라미드를 둘러싼 성채도 사라지고, 출입문도 남동쪽에 한 개뿐이다.

그 이후의 왕들은 너도나도 피라미드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4왕조의 첫 번째 왕 스네프루(Snefru)는 이전의 왕들이 호루스(Horus)의 화신이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태양신 라(Ra)의 화신이라고 주장한 첫 번째 왕인데, 그는 사카라에서 약 15㎞쯤 떨어진 다슈르에 2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첫 번째 피라미드는 솜씨가 서툴러서 허물어질 것 같은 모습이어서 ‘굽은 피라미드’, 혹은 ‘뭉툭한 피라미드’, ‘가짜 피라미드’, ‘마름모꼴 피라미드’라고 불리고, 두 번째 피라미드는 높이 105m로 성공했다. 훗날 다른 파라오들이 외벽 석재를 뜯어가서 붉은 화강암이 드러나 ‘붉은 피라미드’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붉은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있는 14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큰 피라미드이자, 기자 피라미드에 이어서 이집트에서 세 번째 큰 피라미드라고 한다. 또, 스네푸르 왕의 아들 쿠푸왕(Kufu: BC 2575~2465)은 사카라 남쪽 기자에 밑변이 230m, 높이 146.6m인 피라미드를 만들었는데, 쿠프왕의 아들 카프레 왕(Khafra)과 손자 멘카우레 왕(Menkaure)도 기자에 피라미드를 세웠다. 하지만, 멘카우레 왕의 아들이자 제4왕조의 마지막 왕인 셉세스카프(Shepseskaf)는 피라미드를 사카라 북쪽에 세웠는데, 그 무덤은 피라미드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제5왕조(BC 2465~BC 2325)의 파라오들도 피라미드를 쌓았지만, 태양신 라(Ra) 신전이 더 발달했다. 조세르 피라미드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제5왕조의 마지막 왕 우나스(Unas)의 피라미드는 다른 피라미드의 석재를 뜯어서 만들어 그를 제6왕조의 창시자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 피라미드 내부에서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깨알같이 쓴 문서와 벽화가 발견됐다. 파라오의 부활을 기원하는 주문과 함께 사냥 장면,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 고관들의 행렬, 작업 중인 금 세공사, 멀리 남쪽 아스완에서 화강암으로 만든 원기둥들을 배로 운송하는 장면과 여러 상형문자로 부활 신앙을 알게 되어서 이것을 ‘피라미드 텍스트(Pyramid Texts)’라고 하는데, 그 후 중왕국 시대에는 관 뚜껑이나 관 속에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새겨서 코핀 텍스트(coffin text)가 유행하고, 신왕국 시대에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그리거나 새겨서 ‘사자(死者)의 서’라고 했다. 또, 1861년 사카라에서 람세스 2세 때 관리인 티엔리의 무덤에서 고왕국의 파라오 아네지브로부터 람세스 2세까지 역대 파라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석판이 발견됐는데, 헬레니즘 시대의 역사가 마네토(Manetho)가 소개한 58명의 파라오 중 제1중간기, 제2중간기, 힉소스인 파라오들과 아케나톤과 같은 이단적인 파라오들을 뺀 47명의 파라오 목록인 사카라 석판(Saqqara Tablet)은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