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 취재1팀장

살면서 대통령을 다룬 영화를 영화관까지 쫓아가 관람한 적은 없다.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미화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어서다. 그럼에도 ‘건국전쟁’을 영화관에서 본 건 대한민국 역사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공과(功過)는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00분의 러닝타임은 한숨의 연속이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실은 그들이 믿고 싶어하는 사실에 지나지 않았다. 명색이 다큐멘터리임에도 공과를 사실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가치중립적인 사실과 거리를 멀찍이 둔 이 영화는 이승만 복권을 위한 홍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솔직한 감상평이다.

영화는 1960년 대구 2·28민주운동,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 등으로 촉발된 4·19혁명 회고로 시작된다. 잘못은 했다, 하지만 이승만 잘못은 아니라는 게 요점이다. 4·19혁명의 결정적 순간인 3·15부정선거는 이기붕과 자유당이 주도했기에 이승만은 죄가 없단다. 그러면서 ‘이승만이 독재를 한 게 아니라 장기집권을 한 것뿐’이라며 면죄부를 서슴없이 던진다.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키고 사사오입 개헌까지 한 건 대체 무얼 위한 행동이었을까.

영화에는 영웅 이승만을 위해 다른 영웅들을 극단적으로 죽인다. 영화는 그가 3·1운동을 이끌었고, 강대국을 통한 외교독립만이 제일이라 판단하는 등 영웅 이승만의 선각자적 발상 덕에 독립할 수 있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윤봉길·김좌진·안중근·신채호 등 애국계몽, 무장투쟁 등을 통한 독립을 꿈꾼 이들은 무의미한 일을 했다는 건가. 3·1운동 직전 그가 이른바 국제연맹 위임 통치 청원을 주도한 후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한탄한 이유를 역설적으로 영화가 알려주는 것만 같은 기분은 오해일까. 내친김에 영화는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정국에서 북한의 군사력과 경제력, 배후의 소련과 중공을 두려워해 정부 수립을 반대했다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한 건 결국 이승만 혼자였나보다.

인터뷰이 구성도 석연찮다. ‘일본군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이 여전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를 필두로 대부분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이다. 이승만 공과 재조명은 애초에 생각도 없었다는 증거다. 이쯤되니 윤석열 대통령이 이 영화를 왜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는지 알겠다. 이런 영화로는 절대 이승만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없다는 확신을 들게 했기에.

우리나라는 유독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네 편과 내 편을 생각하고 본다. 당연히 역사적 흐름의 전모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오류를 충실히 범한 작품이다. 역사적 인물은 각각의 역할을 인정하는 가운데 객관적으로 보는 게 기본이다. 그래야 아름답고 위대한 역사가 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